지역 대안교육의 현장을 가다① - 마리학교
지역 대안교육의 현장을 가다① - 마리학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4-01 09:30:03
중·고 통합과정 대안교육 ‘마리학교’
하늘과 통하는 기운을 담아 전인교육에
중·고 통합과정 대안교육 ‘마리학교’ - 2004년 개교, 39명 생활
<지역 대안교육의 현장을 가다① - 마리학교>
“생명이 곧 하늘입니다.”
대학교육, 대안학교를 말하며 먼 산간벽지나 전국 명소를 떠올리기 쉽지만 인천에도 대안교육이 쑥쑥 자라고 있다. 민족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강화는 이제 대안교육의 못자리로서도 의미가 깊은 땅이다. 마리학교(교장 황선진/www.mari.or.kr)는 뜻 있는 이들의 대안공간으로 각광받는 강화에서 바른 사람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정신을 실현하는 곳이다.
어느 여름날,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잊혀진 과거의 흔적처럼 구 길상초등학교 초지분교(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1140-4)가 한 움큼 땅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이 지난 1999년 마리서당을 씨앗으로 2001년 11월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이사장 오영호)이란 결실을 맺은 대안학교 ‘마리학교’다. '마리'는 마리산(마니산)에서 빌려온 말로 하늘과 통하는 기운, 머리의 주체이자 핵심이 옛말로 '마리'에 해당한다.
마리학교 전경
마리서당은 세시풍속과 풍물을 중심으로 농촌 일상생활속에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적용한 현대적 서당이었다. 이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라는 교육목표로 교사, 예술인, 농민 등 50여명이 머리를 맞댔다. 강화도환경농업농민회(회장 김정택), 강화생활협동조합(이사장 오교창), 대안교육연구실천모임(공동대표 이철국, 성국모), 도서출판 민들레(대표 현병호), 인천도시생태연구소(소장 박병상) 등이 모였다.
강화가 고향이면서 한창 시절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황선진(54) 교장은 “전통사상과 문화, 철학을 추구하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역사적 흔적이 역력한 강화가 제격”이라며 “현재 150가구 정도가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완성을 지향하는 마리학교는 개성이 강하고 특징 있는 친구들이 입학해 서로를 배우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04년 2월 정식 개교한 마리학교는 현재 중학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형식상 조합원의 자녀가 입학할 수 있는 마리학교에는 편입생까지 39명이 올망졸망 생활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이전의 기본 지식교과와 예술교과 그리고 오후에 의식주에 관련된 생활교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자율성을 높이는 학점제 교육과정과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개성탐구수업, 교과 통합프로젝트 수업, 체험학습 및 수련 등을 주요 내용으로 진행된다.
6년형 중·고 통합과정을 염두에 뒀던 마리학교는 현재 여건이 따르지 못해 중학과정만 일단 운영하고 있으나 오는 2008년 이후 고등학교 과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더욱 크게는 고등학교 과정과 대학과정을 5년으로 묶은 전문학교과정도 신설할 꿈을 키우고 있다. 또 대안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학교 홍보 차원에서 내년엔 인천 시내에서 입학설명회를 열어 학생 유치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학교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황선진 교장
입학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마리학교의 교육목표에 대한 동의와 학생, 학부모, 학교 3자 합의가 전제된다. 못 박힌 정원은 없으며 대 전제에 문제가 없으면 모두 입학이 허용된다. 대체로 학년당 15명선에서 구성되고 서류전형과 5박6일간의 학생 예비학교, 학부모학교 등의 순서를 거쳐 입학이 결정된다. 학부모학교는 부모 역시 ‘학교’에 적극 참여한다는 뜻에서 원탁회의나 수련 등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학비는 마리교육공동체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가정 형편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입학금과 수업료를 내는 것이 원칙이다. 입학시 보통 발전기금 명목의 조합비 3백만원을 내고 수업료는 월 33만원원 정도, 여기에 약 25만원 가량의 생활비가 보태진다. 부모가 NGO활동가이거나 소농, 노동자일 경우 발전기금 150만원, 수업료도 1/2로 감면된다. 대안학교의 특성상 체험위주의 교육과정, 자체적인 재원조달 구조로 인해 교육비가 다소 비싸다고 생각될 수 있다.
입학 후 월~금요일까지 생활관(기숙사) 생활이 원칙이다. 전 학생을 고루 섞어 어른 1명과 함께 5~11명 단위로 소가정을 꾸린다. 이들은 학교 밖에 별도로 마련된 집에서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지고 가정을 유지해 나가며 학업을 익힌다. 지금은 농촌의 구옥을 사용하고 있어 다소 불편이 따르지만 내년에는 환경이 좀더 나은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있지만 서로 다독이며 명상 수련 등을 통해 어울러 나간다고 한다.
마리학교는 당장은 학력인정이 되지 않아 상급학교로 진학하려는 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자격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이미 졸업한 5명의 학생(편입생) 가운데 4명은 상급 대안학교에 진학했고 1명이 일반학교로 갔다. 이 학교에 인천이나 수도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8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해남, 창원, 곡성, 대구 등 각지에서 지원한 청소년들이다.
너른 운동장의 풀을 깍는 중에 잠시 쉬며
황 교장은 나름대로의 어려움에 대해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와 활동에 매력을 느끼며 참여하는 디지털 세대로서의 특성을 나타내지만 우리 교사들과 부모들은 이를 어수선하다고만 생각하고 이해하지 하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 학교가 이들의 능력을 잘 발현해 주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들고 오히려 더 자율적이거나 연대, 평화지향적인 그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만큼 어른과 세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이 당연히 발생한다. 학생들 간에도 어떻게 늘 웃음만 있을까?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일상이 정지되고 식구회의가 소집된다. 이 자리에서 학교 구성원 모두는 해법을 상의하고 책임당사자의 사회봉사 또는 자숙의 시간을 결정내린다. 지난해 학생 두 명이 100일간 무예와 참선 등 수련 처분을 받아 학교를 잠시 떠나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체벌이 좋았다는 후문. 흔히 생각하는 체벌은 없으며 본인이 원치 않는 한 퇴학도 없다.
황선진 교장은 “우리 학교는 학생이나 학부모 개인의 선택과 경험, 자기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며 오히려 권한다.”면서 “그간의 경험으로 고학년일수록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고 개성에 따라 자유롭고 맑게 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의 ‘문제아,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꼬리표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 마리학교는 이념형 대안학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가 키우고 배출하려는 사람에 대한 상이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장래희망, 경쟁이요?
원하는 대로 시행착오 겪으며 제 갈길 선택
열악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개성있게 꾸며놓은 동아리방
마리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은비(15) 양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다.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컨테이너 박스 동아리방에서 만난 이 양은 후배와 동료들과 함께 1학기 체험학습 촬영 내용을 편집하기 위해 기획회의에 여념이 없었다.
영상동아리 ‘울트라’의 회장인 이 양은 재학생들이 학년별로 지난 학기에 감행한 섬진강 도보여행과 러시아 여행 등 만만치 않는 대장정을 필름에 담아야 한다. 울트라는 스쿨존 프로젝트 참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졸업 작품을 위해 나름대로의 열정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 양은 제도권 교육에 1년간 몸담았다. 2학년 때 마리학교에 편입했으니 이쪽저쪽의 생리를 익이 아는 터다. 그는 “단순히 어디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아이는 대안학교가 싫어 제도권 학교로 떠나가기도 한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영상동아리 '울트라' 회원들이 작품을 구상하는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 맨 좌측이 이은비 양)
하지만 본인의 경우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잘라 말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요구가 싫었다.”는 이 양은 “고정된 장래 희망은 없다. 굳이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좋으면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보통 또래의 아이들은 ‘대안학교’라면 교복이 없고 시험도 없으며 머리 모양에도 간섭하지 않는 사실에 미리부터 호감을 갖는다. 그는 “이곳에서는 제도권 학교에서보다 자유롭게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어 좋다. 꼭 직업이나 경쟁을 의식하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양이 마리학교를 먼저 알 수도 없었으며 어떤 점에서 좋은 지도 몰랐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소개로 이 학교를 알고 다니게 됐다. 이 양은 상급학교도 대안고등학교를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는 공부, 좋은 학교 진학에 대해 걱정하지만 별다른 변화를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지영일 편집위원 openme@incheo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