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들의 생각

도시에서 까칠하지 않기, 따뜻하게 통(通)하기

형과니 2023. 4. 8. 00:25

도시에서 까칠하지 않기, 따뜻하게 통()하기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4-25 22:17:04

 

도시에서 까칠하지 않기, 따뜻하게 통()하기

<전문가 기고 - 박병상의 풀꽃세상>

 

 

언젠가 미국의 한 유수한 언론이 급속히 개인화되는 한국 대중교통의 차가워진 풍경을 전했다 한다. 그 예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미덕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미국 지하철에서 젊은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기란 여간해서 어렵다. 한국 지하철의 최근 모습을 자국인에게 전한 미국인 기자는 나이 든 이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는 한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보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양보하는 젊은이는 많다. 그들은 노약자 보호석에 앉았다 노인이 들어오면 냉큼 일어나곤 한다. 아직 이 땅의 젊은이는 그런대로 따뜻하다.

 

70년대,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서 있는 학생의 책가방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사양하는 학생의 가방을 억지로 받아 무릎에 켜켜이 쌓아 앞이 보이지 않을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에는 가방을 뉘어 무릎에 놓았는데, 간혹 도시락 반찬으로 넣은 김치에서 국물이 새나와 교복을 적시는 낭패를 겪기도 했다. 그래서 사양했던 것이건만, 서로 무안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선반이 설치된 지하철이 등장하면서 버스에도 가방을 얹을 수 있는 선반이 생기고, 가방 받아주는 미덕은 점차 사라졌다. 노약자 보호석이 생기면서 그 이외 좌석에서 자리 양보하는 젊은이가 줄어들었고, 어느새 젊은이들이 노약자 보호석을 차지하곤 했는데 그 장면을 미국 기자가 보았던 모양이다.

 

한데 아니다. 승객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노약자 보호석에 앉지 않고 버티는 젊은이의 모습이 피로해소 음료 광고로 채용돼 인기를 끈 이후 지하철의 노약자 보호석의 윤리는 정착된 느낌이다.

 

요즘 대중교통에서 가방을 받아주는 이는 거의 없다. 선반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남은 사람이라도 게름직하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 쓸데없는 의심을 사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자리에 앉은 남성이 무거워 보이는 핸드백을 받아주려고 핸드백을 살짝 잡아당기며 여성의 눈을 마주하면 그 여성은 어떤 시선으로 남성을 바라볼까. 변태나 치한으로 여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모르는 이와 눈 마주하지 않고 선반에 올리는 게 상책이다. 무거운 물건은 아예 배낭이나 어깨에 걸치는 가방에 넣는 게 속편하다.

 

인천 지하철의 대부분 차량에는 선반이 없다. 끈이 없는 가방을 들고 서 있을 땐 인천 지하철은 불편하다. 그럴 때 누가 가방을 받아주면 좋으련만,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는 책 읽는 시간을 내기 좋은 장소인데 한 손에 가방, 한 손에 책을 들고 책장 넘기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비라도 내리면 우산과 가방을 한 손에, 책은 남은 손에 들고 책장을 넘겨야 한다.

 

선반을 왜 갖추지 않은 거지. 승객을 위한 작은 배려를 왜 외면한 거지. 익명의 이웃이 어깨를 부딪치며 사는 도시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배려다. 자칫 삭막하기 쉬운 도시에서 이웃과 충돌하면 짜증밖에 남는 게 없다. 공원에 동반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물론이고 교차로의 정지선을 잘 지키는 이유다.

 

자연은 우리를 한결 너그럽게 하고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우리가 녹색에 동화되는 이치는 무엇일까? 본디 자연의 산물인 사람인지라, 녹지에서 낯모르는 이웃을 만나 눈인사를 나누어도 이상스럽지 않다. 이웃을 배려하는 착한 도시를 위해 녹색 공간을 넓게 조성해야 한다. 대중교통에서 다시 만나면 반갑게 가방을 받아줄 수 있다. 따뜻해진다.

 

 

* 필자 박병상 님은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평소 '우리는 자연의 일부'라는 소신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