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광철의 전망차

인천의 이방인들

by 형과니 2023. 4. 19.

인천의 이방인들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1-23 17:33:31


인천의 이방인들


1883년의 개항으로 인천에 외국인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중국인·일본인들이 찾아들기는 했으나 그들은 우리와 같은 피부색이었다. 파란눈의 구미사람이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개항 이후였다. 생김새나 차림새가 달라 낯설던 판에 유언비어까지 퍼져 원주민의 눈에 비친 구미인들은 두려움이었다.


그런 중에도 인천항의 외국인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독립신문 1896년 12월 22일자에 의하면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일본인 4천503명이고 미국인 15명, 프랑스인 7명, 영국인 6명, 독일인 18명, 이탈리아 2명, 그리고 오스트리아·포르투칼·그리스인이 각각 1명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해 일본인은 2천561명, 중국인 1천331명, 기타 57명이던 것이 2년 후인 1898년에는 일본인 4천301명, 중국인 1천781명, 기타 65명으로 불어난다. 기타는 아마도 구미인일 듯하다.


이것이 8년 후인 1906년에는 일본인이 1만31명으로 한국인 1만3천362명을 육박하게 된다. 기타로 집계되던 구미인은 이렇게 세분되는데 영국인 35, 그리스인 6, 미국인 14, 프랑스인 14, 이탈리아인 1, 독일인 24명이다. 그해의 중국인은 1천496명이었다. 경술국치를 겪기 4년 전인 그해에 이를 보아서도 일본의 침략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참 지나 정부가 수립된 이후 경제화가 진척되던 1984년 인천의 외국인수는 23개 국적에 2천438명이었다. 너도나도 무슨 이권이라도 없을까 하여 기웃거리던 개항초와는 양상이 다르다. 이때 중국이 가장 많고 미국·일본·베트남인 순이었다. 서구인은 물론 멀리 남미인·아프리카인도 있었다. 개방사회와 국제화가 열리는 시기였다.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천500명에 이른다는 보도이다. 국적별로는 중국·필리핀·태국·베트남순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국제도시가 무색하다고 하는데 국제화의 척도는 외국인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큼 이방인에 대한 배려가 우리사회에 있느냐가 조건이다

'오광철의 전망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러기섬이 된 이유  (0) 2023.04.19
갈지자 운전  (0) 2023.04.19
근면과 지혜로운 해  (1) 2023.04.19
신 가정별업도  (0) 2023.04.19
빗물 받아쓰기  (0) 202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