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과 인천시민사회운동21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 仁川愛/인천시민사회운동 2019-05-13 13:10:05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은 노동자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1958년 5월 ‘가톨릭 노동 조합’이 조직되고, 그 해 11월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가 발족하였다. 인천에서는 1966년 1월 12일 ‘인천 가톨릭 노동 청년회’가 발족한 것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운동이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브랜스필드 신부의 지도로 강화에서 시작된 JOC 활동은 실제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성과를 가져왔다. ‘관찰, 판단, 실천’을 세 가지 지침으로 둔 JOC의 활동은 노조가 없던 시절 그 역할을 대신하며 노동자들의 의식화에 기여하였다. 인.. 2023. 7. 1. 시민사회운동 20년(22)-지역현안과 연대(3) 시민사회운동 20년(22)-지역현안과 연대(3)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1-12 22:31:24 시민사회운동 20년(22)-지역현안과 연대(3) 군부대 터 환수·시민공원화 결말 못내 1998년 12월4일 오전 10시쯤 연수구 동춘동 봉재산 공군 방공포 부대에서 나이키 미사일 한 발이 잘못 발사됐다. 미사일은 송도 앞바다 매립지 지상 500m 상공에서 자폭장치로 폭발했다. 시민들을 경악시킨 오발 사고 뒤 인천시와 국방부는 송도 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됨에 따라 2000년 6월 봉재산 기지를 영종도로 이전키로 합의함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당시 인천시와 국방부 간 문학산 미사일 통제소의 이전문제에 따른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2005년 5월 인천시와 공군 방공포대 사령부는 문학산 미사일부대.. 2023. 4. 18. 경인운하 건설반대 운동 경인운하 건설반대 운동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1-12 22:30:10 시민사회운동 20년(21)-지역현안과 연대(2) - 경인운하 건설반대 운동 1987년 여름 집중호우로 굴포천 일대 주민들이 심한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에 굴포천 종합치수 대책이 수립되고, 89년 5월에는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경인운하 건설이 검토되기 시작한다. 굴포천 치수사업과 경인운하 건설의 연계 속에 건교부와 환경단체를 축으로 한 기나긴 공방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92년 12월 굴포천 종합치수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유량의 50%는 방수로를 건설해 인천앞바다로 보내고 나머지는 굴포천 본류로 흘려보내 한강으로 보내는 계획이었다. 건교부는 94년 4월 굴포천 치수계획을 변경, 방수로 폭을 40미터에서 80미터로 확장하여 홍수 전량을.. 2023. 4. 18. 난개발식 도시팽창에 녹색환경지키기 난개발식 도시팽창에 녹색환경지키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0-11 20:58:24 시민사회운동(19)-2000년대 발족 단체 난개발식 도시팽창에 녹색환경지키기 2000년대 들어 인천의 개발과 도시의 팽창은 가속됐고, 시민사회가 지키려는 환경적 가치와 자본의 개발논리는 더욱 날카롭게 대치했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도심 재개발, 도시공간의 용도변경 등을 통한 개발은 지역사회의 이해(利害)와 얽혀 광범하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됐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경인운하, 계양산 골프장 사업과 같이, 개발 현안에 있어서도 관과 결합한 자본의 공세는 시민단체와의 대치와 갈등을 심화시켰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연대하여 ‘투쟁’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평화, 통일운동의 새 길을 연 2000년 6.15 남북정상.. 2023. 4. 16. 낙선운동, 당선운동 낙선운동, 당선운동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9-19 11:35:29 시민사회운동 20년(18)-낙선운동, 당선운동 정치권 개혁의지 없다 판단 인적청산 시민의 힘 빌리다 2000년 4·13총선의 낙천낙선운동은 99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벌어진 시민단체들의 국정감사 모니터 운동에서 배태됐다. 국감모니터 결과가 언론에 발표되자 국회의원들이 격렬히 반발했고 상임위 방청을 금지시키는 조치로까지 이어졌다. 낙천낙선운동은 이 과정 거치며 새천년 정초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치권 스스로의 제도적 정치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시대적 인물, 부패의 고리에 얽혀있던 국회의원들의 인적 청산을 위한 방식으로 낙천낙선운동이 제안됐고 시민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0년 1월10월, 경실련이 총선 부적격자 1.. 2023. 4. 16. 인천 시민사회운동 20년-6월 항쟁과 운동의 분화(1) 인천 시민사회운동 20년-6월 항쟁과 운동의 분화(1) 仁川愛/인천시민사회운동 2007-07-31 00:39:50 인천 시민사회운동 20년-6월 항쟁과 운동의 분화(1) 6월 햇살받은 민중운동 꽃처럼 피다 6월 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민주운동은 큰 폭으로 확대되고 분화되기 시작했다. 7, 8월 ‘노동자대투쟁’은 민주적인 노조 결성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지하 노동운동도 공개 활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고립, 분산됐던 주민운동도 대중조직으로 발전해갔다. 또 한편으로 확대 분화된 운동은 국본(인천본부)에서 전(인)민련 ~ 국민연합(인천본부) ~ 전국(인천)연합 등 전선운동으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였다. 경실련 등 서울에서 출발한 시민단체도 89년 들어 인천에도 조직되기 시작했고, 지역에 대해.. 2023. 4. 13.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