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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89

제생당(濟生堂) 제생당(濟生堂)제생당(濟生堂)은 1903년(광무 7) 인천 축현리(현재의 인현동)에서 개업한 약방이었다. 창업자는 훗날 고려약제사회(高麗藥劑師會會長)회장을 역임하기도한 이경봉(李庚鳳)으로, 그는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제생당을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39년에는 학교위생강화를 명분으로 출마하여 경성부회(京城府會) 의원으로 친일활동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제생당에서는‘청심보명단(淸心保命丹)’이란소화제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 소화제가 크게 인기를 누리면서 제생당은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약방이 되었다. 개항기에 알렌등 서양의학을 토대로 조선인을 진료한  의료진들이 한결같이 소화불량을 조선인의 대표적 질환으로 꼽을 정도로 소화제의 수요는 광범위하게 내재해 있었다. 때문에 이 소화제는 그 효능과.. 2024. 11. 15.
문화유산으로 보는 인천 역사 문화유산으로 보는 인천 역사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10-10-12 00:00:25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姜玉葉 Ⅰ. 인천 역사 이해의 전제 1. 인천 역사 정립의 필요성과 과제 가. 인천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발전의 지표는 역사문화인식이 관건 나. 국사와 지역사 다. 근대사 속에 남아있는 식민잔재와 근대문화 라. 지역개발과 문화유산의 보존 문제 2. 인천의 문화유산(2010.8월 기준) 가. 지정문화재 230기(국가 62/시 163기+등록문화재 5기) - 강화 106기(국가 30/ 시 76기) - 고대(19)/고려(33)/조선(93)/근대(37)=총 182기(식물 4기 제외) ※천연기념물(13), 명승(1) 및 무형문화재(30) 등 44기 제외 - 생활(73, 묘지33, 의학9)/관방(50.. 2023. 6. 15.
‘인천 아리랑’을 부르던 부두 ‘인천 아리랑’을 부르던 부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3-18 21:01:15 갯바람 물씬 풍기던 부둣가 인천항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다. 근대적 의미의 항구라고 할 수는 없어도 지금의 연수구 동춘동에 있던 능허대는 그 옛날의 대중국 무역항이요, 영종도의 경원정은 보기 드문 객관(客館)으로서 당당히 존재했던 것이니 만만치 않은 역사다. 글·조우성 (시인ㆍ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인천 아리랑’을 부르던 부두 개항 이후 인천에는 동·서양인 물론 전국 팔도 사람들과 물화(物貨)들이 밀려들었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크게 늘었다. 전체 인구의 9할이 농사에 종사했지만 호구지책이 난망했던 시절, 인천에는 일자리가 하루가 멀게 생겼던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천 러쉬’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인천 인구 유입의 가장.. 2023. 5. 22.
인천은 한국 이민의 출발지이자 본향(本鄕) 인천은 한국 이민의 출발지이자 본향(本鄕)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27 16:10:59 인천역사 책갈피 인천은 한국 이민의 출발지이자 본향(本鄕) 1902년 12월 22일 화요일, 인천 제물포항. 내리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한 하와이 이민 제1진 121명은 쌀쌀한 바닷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기선 현해환(玄海丸ㆍ켄카이마루)에 몸을 실었다. 일본 큐슈(九州) 나가사키(長崎) 항에서 하와이로 떠나는 미 태평양 횡단 기선 ‘개릭 호(S.S. Gaelic)’에 승선하기 위해서였다. 글·조우성 시인·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 항해에 오른 그들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헐벗은 연안(沿岸)의 풍광 같은 백성들의 모습과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국내 정세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민원.. 2023. 5. 20.
1907년 인천에 큰불 -4백 채 잿더미 1907년 인천에 큰불 -4백 채 잿더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15 23:02:02 인천역사 책갈피 1907년 인천에 큰불 4백 채 잿더미 글·조우성 시인·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 불의 역사는 아득한 신화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감히 신이 애지중지하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다. 그 죄로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카프카스 산에서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무서운 형벌을 받는다. 애초에 불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 신화에서는 불이 사람의 창조물이 된다. 단군의 셋째 아들인 부소(夫蘇)가 세상에 해충과 병이 나돌아 목숨을 잃는 자가 속출하자, 부싯돌을 만들고 그것으로써 불을 일으켜 태워 역병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불이 신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 2023. 5. 19.
‘향교’도 최초, 초등 신교육도 최초 ‘향교’도 최초, 초등 신교육도 최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15 23:00:01 인천역사 책갈피 ‘향교’도 최초, 초등 신교육도 최초 새 학기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학식을 한 어린이, 꿈 많은 중학생, 대입 전선에 나선 고3,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을 대학생, 모두 등교길 발걸음이 싱그럽기만 하다. 바야흐로 인천의 수백여 학교들은 기지개를 펴고, 학생들은 힘차고 보람있는 내일을 꿈꾸고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쾌적한 교육 환경과 최첨단의 시설 등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대변혁을 느끼게 한다. 그럴수록 그 옛날 인천의 학교는 어떠했을까 궁금해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글·조우성 시인·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 학교의 원조는 향교와 서당 멀리 고려 시대 인천의 학교에는 관학인 향.. 202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