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199 동방극장 동방극장 인천의문화/인천문화,전시,공연 2015-06-01 19:59:27 조우성의 미추홀 - 동방극장 조우성 이름이 '동방극장'이었다. '동방(東邦)'. '동방예의지국'이라 할 때는 스스럼없이 읽다가도 따로 떼놓고 보면 낯설어 뵈는 단어다. '동방'은 '동쪽에 있는 나라'니, '우리나라 극장'이라는 뜻인데 거판한 이름과는 달리 객석이 얼마 안 되는 살롱 같은 작은 영화관이었다. ▶3층 영사실과 1층 스크린과의 거리가 가까워 스크린 자체를 비스듬히 뉘여 놓았다. 1인용 의자는 폭이 좁은데다가 스프링이 튀어나온 곳이 많아 불편했고, 검은 커튼 뒤에 있던 화장실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와 관람객의 인내를 요구했었다. 지금 기억하기론, 엄지손톱보다 좀 큰 청색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마저 여기.. 2023. 6. 28. 경인교대 경인교대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5-31 15:40:13 경인교대 조우성의 미추홀( 580 ) '인천사범학교'는 6·25전쟁 때 개성에서 온 '피난지 학교'였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개성사범학교'로 설립돼 1950년 4월 국립으로 승격했는데, 전쟁통에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1952년 비로소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현 남구청 일대에 자리잡은 '인천사범'은 조낙연 교장을 비롯한 교사 23명, 재학생 800여 명으로 재출발해 1953년 졸업생 174명을 배출하고, 교지 '사우(師友)'를 복간하는 등 '사도육성'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들으라, 어둠 속에 무지의 아우성/이 무리 깨워줄 이 그 누구런가/사랑에 얼크러진 인사의 건아/우리는 새 시대의 등불이로다"는 교가처럼 '인천사범에의 진학'은 청소.. 2023. 6. 13. 문화자산 문화자산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10-04-02 15:38:36 문화자산 조우성의 미추홀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인간과 삶을 처음 기린 분들은 도규계의 원로 신태범 박사,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 언론인 감상봉 선생, 평론가 김양수 선생 등이었다. 그분들이 뜻을 모아 '우현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 1974년이었다. 그 후 1992년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우현 고유섭 선생 동상'을 제작해 인천시에 기증했다. 이는 광복 후 우리가 선대 인천인을 기려 동상을 세운 최초의 사업이었다는 지역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우현 선생을 기린 또 한 분이 있다.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의 주인 이겸로 선생이다. 생전에 교분이 있던 것은 아니나 검여 유희강 선생을 통해 흠모하게 돼 자비로 1993년 전 4.. 2023. 6. 12. 인천의 '매운 맛' 인천의 '매운 맛'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3-27 10:58:40 인천의 '매운 맛' 조우성의 미추홀 "새벽이 되면 쌀장사나 쌀 거간이거나 객주집 주인, 정미 직공, 목도꾼, 지게꾼 모두 가까운 술집으로 들어간다. 해장국 냄새가 김에 서려 행인의 코를 찌르고 회를 동하게 한다." 고일 선생이 전하는 옛 해장국집 풍경이다. 해장술로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고 한다. 뜨끈뜨끈한 술국밥 속 쇠뼈다귀에 흐늘흐늘 붙어 있는 고기와 구수한 콩나물, 조갯살, 선지 등이 들어 있는 얼큰한 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배가 남산만 해졌다는 이야기다. 그 해장국이 추탕, 냉면과 함께 인천의 3대 먹을거리 명물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인천 한 세기'의 저자인 신태범 박사는 이를 '개항이란 특수 환경이 빚어낸 작.. 2023. 6. 11. 고교야구 고교야구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3-15 11:59:09 고교야구 미추홀 조 우성 야구(野球)가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사실은 몇 해 전 인고ㆍ동산ㆍ제고 총동문회가 함께 펴낸 '인천야구 한 세기'에도 수록돼 있다. 1920년대 '웃터골운동장'에서 벌어진 각종 경기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때부터 야구는 인천 스포츠의 대명사였다. 1934년 인천중학교가 설립되면서 구장을 인적이 드물었던 도원동으로 옮겼는데, 그 2년 뒤엔 정면 1천 석, 좌우측 각 2천 석 등 5천 석 규모의 제법 큰 야구장을 완성하였다. 인천 야구의 전설을 화려하게 만들어 간 유완식(일본 한큐브레이브스), 김선웅, 장영식(일본 갑자원대회 출전), 박현덕(연희전문 선수) 선수 등이 도원동 야구장에서 꿈을 키웠던 것은 지역.. 2023. 6. 10. '짠물'전(展) '짠물'전(展) 인천의문화/인천문화,전시,공연 2010-03-15 11:57:24 '짠물'전(展) 조 우성 그 옛날 주몽의 아들 비류는 미추홀로 이주해 온 개척자였다. 그러나 물이 짜 농사를 짓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백성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게 되자 그를 부끄러워하여 자결한 원조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이기도 했다. 비류를 자결에 이르게 한 '짠물' 때문이었는지 언제부턴가 '인천은 짜다'고 일컬어져 왔고, '인천사람'은 '인천짠물'이라 불렸다. 일각에서는 그 같은 별호를 심히 불쾌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알고 보면 사정은 크게 다르다. 누가 만일 '인천은 싱겁다'든가, '인천맹물'이라고 하면 자긍심을 가질 것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세상의 '맹물'은 물에 물탄 듯하여 개성이 없고, 쉬 썩어 독한 냄새를 .. 2023. 6. 10. 이전 1 2 3 4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