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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관광,가볼만한곳

문학산 기행

by 형과니 2023. 4. 23.

문학산 기행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8-03-14 22:35:50

 

엄마 품처럼 포근한 인천의 주산

 

문학산 기행

 

황해 푸르러 멀리 퍼지고 구원한 문학의 정기 감도는 여기는 내 고향 인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인천시민헌장의 한 구절이다. 인천에는 웅()한 산, ()한 산은 없지만 시민 모두가 경외심을 갖는 문학산이 있다. 인천의 탯줄이 묻힌 산, 엄마 품에 안기 듯 문학산에 안겨본다. 연수구 선학동 윤성아파트에서 출발, 군부대 우회도로를 따라 정상에 오른 뒤 사모지고개를 따라 내려와 연경정을 거쳐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는 노적봉까지 코스 따라가 본다.

 

# 배꼽산

 

 

해발 213m의 문학산은 학이 많아 학산(鶴山), 혹은 옛 인천도호부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 이는 당시 먹물께나 먹은 양반네들이 부른 이름이었고 민초들은 그냥 배꼽산이라고 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마치 사람이 배꼽을 드러내놓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이란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까지 만해도 동네사람들도 배꼽산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더 정감이 간다.

 

문학산 오르는 길은 연수구 선학동, 문학경기장, 남구 학익동, 문학터널, 시립사격장 등 갈래가 많다. 일반적으로 선학동 윤성아파트에서 출발해 옥련동 시립사격장까지 향해 가는 약 4등산 코스를 택하는데 문학산과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연경산 그리고 노적봉까지 종단할 수 있어 그렇다.

 

윤성아파트 뒤 무주샛길을 따라 가면 바로 문학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어디선가 바람결에 함성소리가 실려 온다. 북소리도 함께 울린다. 비류의 군대인가. 북쪽 고갯길을 넘어 문학벌을 내려다보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문학경기장에서 프로축구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산에서 내려다본 문학경기장은 흰 돛을 단 거대한 범선이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조각들이 마치 바다 물결처럼 보이며 문학경기장은 망망대해를 향해 힘찬 출항을 할 태세이다.

 

#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다

 

문학산은 조금만 올라가도 인천의 풍경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좋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바다’. 하얀 바다에 물새가 내려앉은 듯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멀게 느껴졌던 바다가 바로 코앞이다.

 

송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언뜻 보면 송도국제도시의 위용이 신기루처럼 보이지만 그 모습은 실제상황이다. 특히 한창 건설 중인 포스코 주상복합빌딩 4개동이 마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돌기둥처럼 거대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내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배꼽이라 불리는 정상에 밉살스럽게도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여기부터는 민간인 통제선이다. 아쉬운 대로 남쪽 우회등산로로 길을 잡아야 한다.

 

부대 바로 밑으로 난 등산로는 다소 험하다. 대신,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군데군데 막돌로 쌓은 산성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남쪽 산허리에 걸쳐 문학산성의 잔재가 길게 이어진다. 산꼭대기에 천혜의 요새를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구국의 의지가 지금까지 전수된 것일까. 그곳에는 아직도 군사시설이 인천 앞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 땅의 한계와 바다의 무한

 

낭떠러지 같은 길을 조심스럽게 돌아내려오면 문학산과 연경산이 이어지는 산허리로 내려올 수 있다. ‘사모지 고개로 불리는 이곳은 옛날에 도호부청사 쪽에서 청학·동춘·연수 지역과 연결되던 교통로였다. 그래서 백제시대에 바닷길로 중국으로 갔던 뱃터 능허대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사모지 고개(삼호현)에서 연경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좀 심심하다. 그래서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약간의 오르막을 거치니 정자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산 이름을 따서 연경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연경산 봉우리는 인천의 산세를 살피기에 아주 좋은 뷰포인트이다. 철마산과 계양산의 이어짐, 소래산과 관모산의 연결 선 그리고 청량산과 문학산의 끊어질 듯하며 계속되는 산줄기.

 

정자를 뒤로 하고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노적봉 가는 길이 나온다. 203개의 나무계단이 기하학적으로 하늘을 향한다. 한남정맥으로 시작된 산줄기의 기나긴 선이 훠이 훠이 달려와 문학산과 연경산 그리고 노적봉을 거쳐 해안선에서 멈춘다. 땅의 한계와 바다의 무한이 교차되는 접점에 조망대가 서있다. 산의 끝점에서 바라 본 서쪽 바다에는 선홍빛 물감이 풀어지기 시작해 장엄한 노을 쇼가 시작된다.

 

# 산길 따라 역사 따라

 

인천의 주산인 문학산은 2천여 년 전의 백제 건국 설화가 담겨져 있는 곳이다. 일찍이 비류가 AD 18년을 전후해서 미추홀이란 나라를 세웠던 인천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지등 옛 문헌을 살펴보면 이곳이 옛 미추홀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척박한 환경 때문에 미추홀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비류의 개척정신은 오늘도 인천사람들의 핏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문학산이란 이름은 여지도지에서 처음 나온다. 이 산 주변에는 미추홀 왕국과 옛 인천의 유적들이 숨겨져 있다. ‘여지도지인천읍지에는 부읍 남쪽에 미추홀 왕릉이 있다고 전한다. ‘인천읍지에는 부읍 남쪽 남산(문학산)에 미추홀 왕릉이라고 불리고 있는 능이 있는데 봉분이 헐리고 망부석이 넘어져 방치된 채 흉하다라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문학성의 둘레가 403척이며 정상에는 토성으로, 그 외각에는 돌로 쌓은 성이 이중으로 조성됐다고 기록한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김민선 부사가 백성과 함께 힘을 합쳐 성을 개축하고 왜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워 왜군을 물리친 철옹성이기도 하다.

 

문학산 정상 북쪽 성벽 뒤쪽에 있었던 안관당은 임진왜란 때 문학산성 을 지키다 순절한 김민선(1542~1593) 인천 부사를 모신 사당이다.

 

·가을 연 2회에 걸쳐 읍민이 다 같이 제사를 올렸는데 이 제사는 그 후 200여 년 동안 이어졌고 사당이 헐려 없어진 후에도 계속되어 6·25 동란 때 까지 이어졌다고 전한다.

 

산 정상에는 비류정이란 우물이 있었다. 1778년에 쓰인 동사강목에는 성 안에 비류정이 있어 그 물맛이 시원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 직전까지 우물터가 있었으나 전쟁 중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 우물이 훼손되어 없어졌다고 전한다.

 

문학산의 봉우리와 노적봉 사이에 관교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긴 고갯길이 있는데 이 길을 삼호현, 함호재고개, 혹은 사모지고개라고 부른다. 이 고개는 백제의 근초고왕 때(372)에 중국으로 가는 바닷길을 연 한나루(능허대)로 가는 길목이다.

 

지금부터 1600여 년 전 백제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으면서 사신을 배웅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나눈 곳이라고 한다. 이곳까지 따라온 가족이나 친지들이 능허대 쪽으로 멀어져 가는 사신이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빌면서 세 번 크게 불렀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학산서원은 1708(숙종34) 인천부사를 역임한 이단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문학산 북에 창건한 인천서원에서 출발한다.

 

같은 해 학산(鶴山)’이란 액호를 받으며 명칭이 바뀐다. 학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인천의 학문적 기반을 넓혀가다가 1871(고종8) 전국적으로 단행된 서원 정리 정책에 의해 사라진다. 지난 2004년에 학익동 방향 문학터널 북쪽 입구 위에 서원터 비석을 세웠다.

 

자료=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관광개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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