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의 푸른눈물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5-13 15:18:30
은둔의 왕국 꼬레아를 찾았던 푸른 눈의 양인들은 의외로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서 가장 가까운 항구 제물포를 통해 입국했는데, 그때 받은 제물포의 인상을 여행기, 보고서, 일기, 기사 등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행가 샤를르 바라는 개항 직후인 1888년 "제물포만의 경탄할 만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평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경치였다."며 자신의 여행기를 감격스럽게 장식하고 있다.
소위 '시정(施政)'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일제가 '제물포는 갈대가 우거진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 것을 그대로 믿어왔던 미추홀 자는 제물포가 나폴리와 같은 미항(美港)이었다는 바라의 기술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가 하면 아펜젤러 목사가 남긴 선교 보고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大彿)호텔'이 인천부사(仁川府史)의 기술처럼 1889년에 지은 것이 아니라, 1885년 4월 5일 이전에 이미 성업 중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독일인 의사 분쉬, 궁정 악장 에케르트, 사업가 볼터, 전차 기술자 콜브란 등과 함께 제물포구락부를 자주 찾았던 알렌은 자신의 일기에서, 우각리 언덕바지에 별장을 세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경치가 좋다는 알렌의 말을 듣고 고종황제도 이웃해 별장을 지으려 했으나 황후 시해 사건으로 무산됐음을 밝히고 있다.
하와이 이민 주선 등 인천과도 인연을 맺었던 알렌의 증손녀들이 내한했다는 소식이다. 증기선을 타고 왔던 증조부와는 달리 세계 일등의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그들은 과연 어떤 기록들을 남길까 자못 궁금해진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행가 샤를르 바라는 개항 직후인 1888년 "제물포만의 경탄할 만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평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경치였다."며 자신의 여행기를 감격스럽게 장식하고 있다.
소위 '시정(施政)'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일제가 '제물포는 갈대가 우거진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 것을 그대로 믿어왔던 미추홀 자는 제물포가 나폴리와 같은 미항(美港)이었다는 바라의 기술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가 하면 아펜젤러 목사가 남긴 선교 보고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大彿)호텔'이 인천부사(仁川府史)의 기술처럼 1889년에 지은 것이 아니라, 1885년 4월 5일 이전에 이미 성업 중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독일인 의사 분쉬, 궁정 악장 에케르트, 사업가 볼터, 전차 기술자 콜브란 등과 함께 제물포구락부를 자주 찾았던 알렌은 자신의 일기에서, 우각리 언덕바지에 별장을 세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경치가 좋다는 알렌의 말을 듣고 고종황제도 이웃해 별장을 지으려 했으나 황후 시해 사건으로 무산됐음을 밝히고 있다.
하와이 이민 주선 등 인천과도 인연을 맺었던 알렌의 증손녀들이 내한했다는 소식이다. 증기선을 타고 왔던 증조부와는 달리 세계 일등의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그들은 과연 어떤 기록들을 남길까 자못 궁금해진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