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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진의 소설 <쇳물처럼>

by 형과니 2023. 4. 30.

정화진의 소설 <쇳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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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전설인양 쑥쓰럽게 꺼내놓는 기억이지만, 주안공단 네거리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가투'(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쫓겼던 기억이며, 쇠파이프를 든 구사대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밤새 파업 사업장을 지켰던 일들이며, 어린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더러운 욕설과 잔인한 폭력, 노동자들의 분신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주안공단은 그런 곳이었다. 아니,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가 그랬다.

 

정화진의 단편소설 <쇳물처럼>이 주안공단을 무대로 씌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소설가 정화진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으로 내려와 선반공으로 일을 하며 작품을 썼고, 당시 인천에 내려온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주안공단 및 부평공단에서 일 했던 것을 비춰본다면 <쇳물처럼>의 무대를 주안공단으로 축약해도 무방하리라.

 

<쇳물처럼>은 역사적인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났던 그해 <전환기의 민족문학>(풀빛출판사)에 발표됐다. 문학평론가 이희환이 "1980년대의 인천에는 수많은 단위사업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활발한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기에, 노동자 속에서 생활하며 노동 현장의 제문제를 자기 문학의 핵심적 주제로 삼았던 작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87년 전후로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정화진이 <쇳물처럼>을 발표한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소설은 '태양주물'이라는 주물공장에서 노동자인 칠성, 근욱, 천씨 등이 사용자측에 김장보너스를 요구하며 벌어지는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측의 억압을 뚫고 결국 김장보너스를 쟁취하는 승리를 거둔다.

 

이 소설에서 특히 기억이 남는 장면은 김장보너스 쟁취 투쟁에서 승리한 후 천씨가 동료들이 승리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함바집으로 아들을 앞장 세우고 개선장군처럼 함바집에 들어서는 장면이다.

 

하지만 정화진이 20년 전 <쇳물처럼>에서 이뤄낸 노동계급의 낙관적 전망이 오늘날 붉은 쇳물로 활활 타오르고 있지는 않다. 3D 업종들이 물러난 주안공단의 퇴락한 풍경처럼 우리나라 노동자계급은 과거보다 더욱 지독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스무살 청년 시절 주안공단 네거리 밤길에서 보았던 노동자들의 적막한 눈빛이 아직도 거리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불안이라는 무거운 짐이 부가된 채 말이다.

 

 

주안공단 곳곳을 둘러보며 인천교 부근으로 향했다. 인천교는 이미 오래 전에 매립이 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899월 어느날 인천교 부근 한 주방기구 생산업체에서 노동자 두 명이 회사의 노동탄압에 맞서 분신으로 항거했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공장은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철거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실은 결코 소설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허물어져가는 공장 건물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안공단 거리를 다시 걷는 이유는 <쇳물처럼>의 주인공들이 부당함에 맞서고 결국 승리를 쟁취해냈던 그 과정의 단초들이 오늘날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는, 유일무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스스로 세뇌한다. 우리는 이제 막 야만의 시대를 벗어났을 뿐 아닌가.

 

/·사진=조혁신기자 (블로그)mrpen

 

 

 

소설 '쇳물처럼'

 

사용자측의 억압을 뚫고 김장보너스 당당히 쟁취

 

탄광에서 광부 생활을 마친 천씨는 인천의 '태양주물'이라는 주물 공장에서 3년 째 일하고 있다. 김장철인 11월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은 김장보너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하지만 태양주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김장보너스를 준 적이 없다. 칠성이가 김장보너스 얘기를 꺼냈으나 전 상무에게 모욕만 당한다. 그러나 칠성이는 동료들과 힘을 합해 회사에 맞선다. 칠성의 노력으로 현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고 전 상무는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칠성이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러나 천씨를 비롯한 태양주물의 모든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고 전 상무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맞선다.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서자 납품 기일을 맞춰야 하는 전 상무는 노동자의 요구에 굴복하고 만다. 김장보너스를 받게 된 밤, 잔치 분위기 속에서 천씨는 아들을 앞장세우고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함바집으로 들어서며 소설은 끝난다.

 

 

작가 정화진은 1960년 생으로 서강대 영문학과를 나와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1987년 졸업과 함께 선반공으로 일하던 중 그는 단편 <쇳물처럼>을 발표해 우리나라 노동소설의 한 전형을 이뤘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우리의 사랑은 들꽃러럼>, <규찰을 서며>, 장편 <철강지대> 등을 발표했다.

 

/조혁신기자 (블로그)m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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