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 싶은 인천 - 길에서 묻다(동일방직)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2 07:19:37
빛나던 항구엔 텅빈 바닷바람만 …
흐르고 싶은 인천 - 길에서 묻다
전국 최초 여성지부장 배출한 동일방직 민주노동운동 영향
이상·이태준·강경애 작품 등 '노동자의 도시' 문학토양 이뤄
인천일보가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문화이야기'면을 신설, '흐르고 싶은 인천'과 '유머러스 세계사' 코너를 연재합니다.
'흐르고 싶은 인천'은 인천 곳곳에 스며있는 인천의 숨겨진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기획으로 인천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원로작가 김학균씨가 필자로 나섭니다. '유머러스 세계사'는 오늘의 문제들을 역사 속에서 유래를 찾아 재밌게 풀어쓰는 칼럼으로 연합뉴스 외신부장 등 언론인 출신 박철규씨가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가끔 영화나 TV속에서 동물들이 이동하는 장면을 보곤 한다. 그리고 그들을 사냥하는 원주민들을 본다. 그때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동물들이 이동한 뒤를 따라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길이란 것의 처음이다. 길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분분하지만 '동물이동설'이 길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토천(兎遷)이라는 말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말이다. 고려 태조가 남하할 때 길이 없어 난감할 쯤 토기 한 마리가 숲으로 달아나면서 길을 만들어 갈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 속에서 나온 것으로 동물의 이동과 관련된 길의 유래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라고 본다.
동양방직 정문자리
인간들은 길을 통해서 문명을 교역하고 발전시켜 왔으며 그 과정에서 길의 가치차등이 생겼다. 오늘날 예를 든다면 큰길 작은 길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 연유가 그렇다. 특히 길이 열리고 모이는 결절지점에서 인구가 모여들고 사람들은 구매력을 가지고 필연적 시장을 형성, 인류 발달사에 한 장을 열게끔 되었다. 그래서 자연이든 인위적이든 필요에 의해 생겨 그 기능이 없어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탄생시키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길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 했고 한자로는 도(道 : 이치), 로(路 : 과정), 경(經 : 지름길), 진(畛 : 밭두렁) 등이 있다. 도(道)와 로(路)는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지방 행정구역을 일컫고 '사람이(道) 가야할 길(曹)을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road(길, 진로, 행로)라는 말은 라틴어의 rad(말타고 다니다)에서 유래되었으며 way(길, 방법)는 출발점과 도착점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종류 또한 다양하여 당길, 오솔길, 외길, 자갈길, 샛길, 어귀 등이 있고 용도 별로는 장꾼의 장길, 차로, 철로가 있으며 임금님의 길은 어로, 피로 등 다양하다. 하여 길은 문명(문화)이며 역사다. 문명과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바로 길이다. 문명(문화)의 발상지는 강이지만 그 키움이나 번성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없다.
이제 거두절미하고 길을 가보자. 천천히 평화의 길로, 아니 수탈과 수난으로 얼룩진 문화의 길로…
중구 송월동과 만석동을 연결하는 철로 차단기를 통과하여 밀물 몰리듯 들어오는 출근길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면 믿을 사람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60년대 이전 동구는 돈줄이며 젖줄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것다. 왜냐면 동구에 있는 기업들이 지금 지칭하건데 민족기업들 이라 할 수 있고 그 기업들의 월급 날이면 내, 경, 용동의 술집은 물론 수다 떨어 본다면 인천시내 상권이 기지개를 펼정도로 북적 거렸다.
입다물고 움크리고 앉아있는 중봉로 옆 동일방직을 생각하면 쓴 웃음이 번진다. 그 때 그 시절의 영화는 다 어딜가고 텅빈 가슴으로 바닷 바람만 들고 날까.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인천항의 무역 수출의 주품은 피혁과 해산물을 빼면 곡물이고, 석유, 석탄, 설탕 등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그중 면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형편을 본다면 방직가공업이 성황을 이루었음이 가히 짐작이 간다. 1934년 해변 매립지 '무네미'에 동양방직이 세워져 전국 방직계의 일인자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동일방직이다. 보통학교 졸업자를 입사 조건으로 제시 그 시절 정미업소나 성냥공장 보다 고학력을 가진 여공들이라는 것이 정평이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유니폼으로 선정했던 것은 민족의식과 어떤 저항의식을 표출한 속내였다고 생각된다.
설립자 서정익의 애국의 일념으로 세운 기업의 공적이 지대함은 그 조부(서정빈)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실례는 교육사업에 일찍이 뜻을 두고 '제녕학원'을 설립 신문학에 일익을 담당햇다.
1946년에 노조가 설립된 동일방직은 여성 노동사에 획을 그으며 여성지부장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탄생시킨 전무후무한 일은 그때 '주길자' 23대 '이영숙'을 배출,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노조문제로 비화되어 순탄치 못한 노사정의 관계로 비약 구속, 석방농성, 복직투쟁위원회 결성 등으로 공권력 투입을 불러 알몸(반나체) 농성에 이르러 '문화여관'사건 '답동 천주교 단식' 등 7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면면을 대변한 사례로 성숙된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1930년대의 문학사를 보면 인천에 몰려든 하층민의 사회생태를 묘사한 작품들 이 다 이러한 토양에서 이루어진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상의 <지주회사> 이태준의 <밤길>을 탄생시켰고, 노동자의 도시 인천을 주도면밀하게 묘사한 강경애 <인간문제>등과 시편들...
'부끄럼 많은 보석상자 아가씨'의 김기림이 바라본 항구의 불빛들은 지금도 희황찬란 하건만 그 보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아! 인천은 흐르고 있는걸까.
/김학균 · 작가
#인천 #흐르고싶은인천 #길에서묻다. #김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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