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옥선 할머니(78)의 고 함창하 할아버지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2:59:09
"한달넘도록 꿈에 한번을 안 뵈네
좋은데 가서 여긴 잊어나 봐.."
단옥선 할머니(78)의 고 함창하 할아버지 이야기
50년 전 만석동에 정착한 초기 피난민이자 동네 어른이셨던 함창하 할아버지가 3년 전부터 앓아오던 지병으로 지난 3월 17일 돌아가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간 할아버지께서 <만석신문>을 통해 나누어주셨던 많은 이야기들에 감사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나 괴로웠갔시까. 한 20일 동안을 물 한 모금 못 먹고... 돌아가신 날도 몸부림치고 그렇게 아프다고 난리치더니 금새 차분해져서는 가더라고. 정말 한 순간에 말야.
그 냥반 어찌 그리 모진지 몰라. 간지 한 달이 넘도록 꿈에도 한번 안 뵈네 그려. 아마도 좋은데 가서 여기는 잊었는가 봐.
맨 처음 연평에서 한아바이를 만났을 때 내 나이가 32살이였어. 내 나이 스물 여덟에 연평으로 피난 나왔는데, 나온 지 2년만에 본양반을 먼저 보내고 7살, 4살 난 딸 둘 데리고 어찌나 고생하고 살았는지...
도저히 여자 혼자서 애들 데리고 살수가 없겠더라고.
그때 지금 돌아간 냥반도 전쟁통에 본처랑 혜어져서는 아들 하나 데리고 살고 있었고 서로 그런 처지에 오고가다 알게 되지 않았수까.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니 결혼식이 어디있어. 내중에 만석동와서 혼인신고만 겨우 하고 살았지.
그 냥반이랑 만석동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같이 살지도 못했어. 서로 딸린 식구도 있고 했으니 말야. 그래 나는 딸 둘 데리고 영종가서 있다가 내중에 만석동에 우리 동생이 땅막을 하나 얻게 되어서 들어왔지.
동생네 땅막에서 한 1년을 살았는데, 정말 기와집 사는 것보다 마음 편하고 좋습디다.그러다 동생이 색시를 얻었는데, 우리가 나와야 할거 아녀. 그래 큰딸은 12살 때 남의 집 살이 보내고... 인제도 큰 딸이 나한테 뭐라고 그러면 내가 아무 말도 못해. 학교도 못 보내고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살이 시킨 어미가 뭐 할 말이 있겠어. 아직도 미안하기만 하고...
작은딸은 동생네 맡기고 나 혼자만 이 집으로 들어왔어.여기 들어와서도 고생 무지 했쑤다. 시어마이 상도 내가 치루고 가운데 시아바이 상도 내가 치루고 했으니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똥 오줌 다 받아내고...
그래도 영감은 하나 신경을 안썼어. 바람이나 쏘이러 다니고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자꾸 부애가 나네 그려. 작년 가을부터 갑자기 영감이 구들장도 뜯고 보일러도 새로 놓고 집안 구석구석 손보기 시작합디다. 저 창 밖에 비닐도 쳐 놓고 나 죽어 없을 때 바람 불면 이래이래 닫고 열면 된다고 하면서... 아마도 당신 갈 때를 알고 그랬나 싶어.
그 냥반 병원에 있을 때 막내딸보고 "나 죽으면 엄마 다리 아픈 거 다 가지고 갈란다. 니 엄마 이 집이 헐리지만 않으면 여기서 죽것는데 그렇지 못하면 대전 딸네 가서 있으라고 해라" 했더라고. 그게 마지막 부탁이였던 게지. 대전 딸애가 못살긴 해도 맘이 제일 낫거든.
에구 지금도 혼자 있을 때면 ‘어이, 이봐요’하고 그 냥반 부를 때가 있어. 내가 그 냥반 죽어서 태운 거 다 봤는데... 자다가도 내 곁에 뭐가 있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지고...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소주 한 병 팔지 못할 때가 많아. 그 냥반 갈 때까지 정신은 멀쩡해서 물건값은 다 알았는데, 영감 있을 때는 관심도 안가졌는데 내가 셈도 잘 못하니 정말 답답하더라구. 게다가 그냥 가만히 이러고 있으니 더 생각나고 그래. 내가 뭐라도 하면 생각이 안 날텐데. 자꾸 떠올르고 떠올르고 그냥...
그 냥반 물건 다 불 태워 버렸어도 저 군용담요는 못 버렸어. 살았을 때 혼자 화투패 띠는 게 낙이었는데 넋이라도 집에와 담요가 없으면 섭섭할 거 아녀.
(임종연)
함창하 할아버지가 삼화제분에서 노조 만들던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6:45
"12시에 기계를 세우고
파업에 들어갔지"
함창하 할아버지가 삼화제분에서 노조 만들던 이야기
5.16 혁명이 일어나고 몇 해 안 지나서였을게야. 삼화제분에 일할 때 였는데, 거기 정식직원들은 노조가 원래 있었고 뒷마당이나 바께스(밀가루 받는 곳)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었지.
내가 그 하청업체에서 바께스 책임자로 있었는데, 우리도 삼화제분 노조에 가입시켜 달라고 해도 안 해주는 거야. 회사에서도 노조에 사람들이 불어나는 걸 꺼렸었거든.
에이 그러면 우리도 따로 노조를 만들어보자 해서 동네에 조동완씨하고 몇 명이 모여서는 비밀리에 그 일을 진행했었지.
우리가 뭐 노조를 어떻게 만드는 지 알기나 했나. 그래 판유리(한국유리) 노조에 가서는 근로기준법을 좀 알 수 없겠냐 물어보고는 책을 얻어 왔어. 그 책을 얻어와서는 각자 읽고 공부를 한 게지.
그 책이 다 한문이었어. 구학(한문)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나. 그래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공부하고 모여서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그러면서 노조를 만든 게지.
내가 알기로는 삼화제분 앞에 같이 일하던 사람 집에 모여 한 한 달을 그래 공부한 것 같아. 노조가 만들어지고는 뒷마당하고 바께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 50명이 되었는데 전부 노조원으로 가입했었지.
나도 나중에 노조가 세워지고 쟁의가 일어나니 '근로기준법'을 좀 알아야 될거 아니야. 그래 그 책을 구해 가지고 그걸 보아가면서 공부한 게지. 근데 그게 아주 맹랑하더라고 그게 말 잘하는 사람,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 이리 같다 붙이면 이렇게되고 저리 같다 붙이면 저렇게 되고 그러더라고. 그러니 권력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약한 사람은 지고 그러니 소용이 없어. 지금도 마찬가지 아녀.
할아버지가 60년대 초반에 공부했던 노조설립에 대한 책자 '맹원필휴'
원래 노조를 만든 이유가 중간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먹는 하청업체를 없애자 해서 였지. 정식 직원들은 일을 하던 안 하던 매달 월급이 일정하게 나오잖아.
하지만 일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을 못하거나 하면 식구들 먹여 살리기 힘들잖아. 게다가 그나마 받는 돈도 하청업체에 얼마씩 떼이고 있었으니 얼마나 맞지 않느냔 말이지. 때문에 뭉쳐서 한 번 쟁의를 일으킬라고 준비를 한 게지.
그래 노조가 세워지고 나서 중앙 노동청에 우리가 쟁의를 하겠다 하니 거기서는 안 된다 하는 게야. 그도 그럴 것이 그때가 군사혁명 일어나고 얼마 안되었을 때니 쟁의하겠다는 게 되나 안되지.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식량이 없었잖아. 국민들한테 배급할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분회사를 멈추면 밀가루가 공급이 안되고 식량난이 일어나면 군사혁명 세력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잖아.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던 게야. 그때만 해도 밀가루 한 포대에 400원인가 할 때인데 밀가루를 자꾸 뽑아내도 모자라 뒷거래로 700원씩 팔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우리야 뭐 밑질 것이 있나. 그래 알면서도 쟁의를 일으킨 게지. 소위 중앙 노조에서도 하지 말아라 말렸었는데 우리들끼리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래도 해보자 합의를 했지.
그래 약속을 하고는 지금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는구먼. 12시에 기계를 세우기로하고 바께스의 기계 스위치를 내가 내렸지. 바께스에서 밀가루를 안 받아내니 탱크가 꽉 찰게 아냐. 한 1시간 반정도 있으니 공장 전체가 서버렸지.
회사에서 경찰에 연락해서 공장을 경찰들이 다 둘러쌌는데, 밀가루를 실은 차가 공장을 나가려고 하는 게야. 그래 우리 동료 중 하나가 그 트럭 바퀴 밑에 누워서는 차가 못나가도록 막았어. 그러니까 경찰이 트럭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우리를 다 실어서 경찰서로 데리고 갔어.
그래 주동자 급으로 분류된 사람은 고등군법회의에 가서 재판을 받았어. 나중에 혁명세력에 있던 사람 중에 고향이 이북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모두 겨우 풀려났었지.
그렇게 해서 하청업체를 없애고 하청업체에 있던 사람들 거의가 정식직원이 되었었는데, 요즘 삼화제분에 하청업체가 다시 생겼다는구먼. 다른데도 다 마찬가지고 말야. 요즘 정부나 세상이 노동자들을 너무 괄시하는 것 같아.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임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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