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덕분에 그(피난) 고생은 덜했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1-25 13:44:25
“시아버지 덕분에 그(피난) 고생은 덜했지”
김금은(89)할머니가 들려주는 피난시절이야기
내가 원래 태생은 충청도 공주인데 열여섯에 부평으로 시집을 왔어. 부평서 농사지을 적에 육이오를 만났지. 난리가 났으니까 어떡해. 피난 가야지. 그때 우리 집에는 아흔 살 되신 시아버지만 있었고 바깥양반은 제국민병(징용) 끌려 나가고 없었어.
바깥양반은 제국민병 나가고 애들은 6명이 다 또롱또롱 해. 그래도 데리고 피난 나가려고 인제 밤새도록 미싱에 앉아서 버선이며, 방한모자며 만들어 쌓아 놓고, 새벽에 달아나려고 쌀을 씻어 놓고, 술을 한 항아리 해서 아랫목에 싸 놓았어. 시아버지 잡수시라고. 그렇게 해서 갈 준비를 해 놓았는데, 새벽녘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셔서는 글쎄 ‘느그들은 인제 죽어서나 저승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그 여섯을 다 가서 이마를 대고 우셔 글쎄. 가만히 미싱을 돌리다 말고 생각해보니 거기서 살 거면 여기서도 살고 여기서 죽을 거면 가도 죽을것 같아 그냥 포기를 해 버렸어.
그때 피난 가는 걸 포기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 그때 피난 갔던 사람들은 애도 죽고 오고, 영감도 죽고, 별 사람 다 많아. 나도 피난을 갔으면 그 쫄망쫄망한 애들 여섯을 데리고 얼마나 고생이 될 거야. 그런데 나는 시아버지 덕분에 그 고생은 덜 했지.
집에 있는데 우리 집으로 피난꾼들이 몰려드는 거야. 그때 우리 집이 컸어. 삼십 몇 칸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이 크니까 육이오 때 저기서 넘어온 사람들도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도 들어오고, 그 피난꾼들 저기 하느라고 아주 혼났어.
그런데 하루는 비행기 소리가 앵앵거리고 나더니만 우리 집으로 인민군 네 명이 들어와서는 대청에 자빠져서 숨어 있는 거야. 대청에 자빠져서 있길래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게 하고 나만 밖으로 나갔어. 나를 보더니 한 놈이 찹쌀이나 술을 달라는 거야. 그래 내가 없다고, 내가 꾀를 내어 ‘서울에서 농사를 지어볼까 하고 작년에 내려와 아직 농토를 못 잡아 농사를 못 지었다’고 했지.
그런데 핑계를 듣더니 나가던 세 명 중 한놈의 새끼가 중대문 안에 발하나, 안마당 쪽으로 발 하나 들이고는 서서 총을 안쪽으로 그어 대는 거야 내가 대청에 서 있는데 말이야. 어찌나 놀랐던지.
그래도 내가 계속 찹쌀도 없고 술도 없다고 계속 얘기하니까. 한 놈이 나가 가지고서는 저기 큰 향나무 있는 집에 술도 있고, 쌀도 있고 하니까 가서 해 오라는 거야. 보니까 그 집은 우리 바깥양반하고 둘도 없는 친구네였어. 그래도 계속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엄살을 피웠더니 총을 또 한 번 그어 대더라구 그래서 할 수 없이 술을 가지러 갔지.
그 집에 가니 다들 피난가고 아무도 없어서 술을 퍼 가지고 와서 우리 집으로 와서는 짰지. 술을 짜서 세되를 병에 담아 놓고 양푼에 남아있던 술을 주니께 자기들끼리 마시더라구. 그래서 그렇게 먹고는 인제 죽인다는 말 안하고 총대를 딱 꺾고 어깨에 걸더라고. 그래서 인제 떨리는 게 한시름 놓이더라구 고놈의 총대 꺾는 걸 보니께.
그래서 내가 몸은 피했어. 난리통에도 애들 안 죽이고 말이야. 몇 달 있다가 제국민병 나갔던 바깥양반이 그 동갑내기 친구하고 같이 들어오셔. 원래는 일본에서 인천 하인천에 맥아더 장군이라나 빽아다 장군이라나가 있는데 그때 상륙해서 들어왔다가 저기 충청도 우리 친정오라버니네 있다가 들어오는 거더라구.
그런데 그 동갑내기 친구 분이 며칠 있다가 나를 불러 그래 왜 부를까 하고 가 봤더니 하는 말이 ‘병인네 엄니요 우리하고 무슨 웬수를 져서 피난도 안가시고 집에 계시면서 우리 집에서 명주니, 술이니, 돈이니 그런 걸 다 꺼내다가 인민군 보양을 해 주었냐“고 그러네.
그 소릴 듣는데 막 열이 나더라구 막 사지가 떨리더라구 그 소리를 들으니께. 그래서 사정을 얘기 했지. 인민군들이 중대문에 발 하나 걸고 총을 그어 대는데 그러면 어떻게 안 하냐고. 나 목숨 살기 위해서 해다 주었다고 했지 그러니께 그이가 풀어지더라구.
그래 나 피난 안가서 그런 고통도 받고, 집에서는 피난민한테 볶여 죽겠고. 인민군한테 그냥 죽을 뻔 하고 그 지랄을 했어. 나 아주 고생 폭 했어.
(강길재) 2007/10/28
'만석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만석부두는 (0) | 2023.05.03 |
---|---|
“비올 땐 부침개 하고, 멸치 국물에 국수 말아 먹어야지” (0) | 2023.05.03 |
김순애(75)할머니가 들려주는 피난시절 나물 이야기 (0) | 2023.05.03 |
43번지 굴막에서 보낸 이틀, (2) | 2023.05.03 |
“굴막에서 굴만 까나? 구청에서 직접 와서 봐야 혀” (0)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