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용유도의 이색공간 둘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9-01-30 12:03:04
가보니 좋았더라|영종·용유도의 이색공간 둘
그 섬의 색다른 시時·공空
신록이 우거진 영종도와 용유도에 초록바람이 분다.
공항과 해수욕장으로 대변되는 그 섬 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두 곳의 장소가 숨겨져 있다. 초록바람에 몸을 실어 낯선 그곳으로 기행해 본다.
글·유동현 본지 편집장│사진·김성환 자유사진가
나그네, 열린 창(窓)으로 다른 세상을 보다
세계여행문화원
영종도 구읍나루터 너머에 위치한 세계여행문화원에 가면 인천이 낳은
‘세계의 방랑자’ 고(故) 김찬삼 교수의 여행 발자취를 뒤쫓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가이다. 인천에서 성장한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세계일주여행의 꿈을 키웠다. 1959년에 첫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지구를 32바퀴를 돌며
세 번의 세계일주를 했다. 여행은 그에게 삶 그 자체였고 숙명이었다. 몇 개월씩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곧바로 다음 여행을 위해 다시 봇짐을 꾸리곤 했다. 14년 동안
160여 나라 1천여 도시를 직접 발로 밟으며 세계를 품에 안았다.
직접 체험한 세계 곳곳의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 여러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당시 웬만한 가정집의 서가에 꽂혀있던 ‘김찬삼의 세계일주여행 전집’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그 책들을 보며 세계를 엿보고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다.
영종도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의
심신을 달래주던 곳이었다. 번잡한 도심에서 뚝 떨어진 이곳 영종도에서 다음 행선지를
계획하며 기운을 충전시켰다.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던 그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여행을 떠났다. 그 자리에 아들 김장섭 씨가 ‘세계여행문화원’이란 문패를 달았다.
2,700평 부지에 기념관과 여행도서관, 그리고 여행카페 등으로 꾸몄다.
고인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기념관에 들어서니 여행가의 체취가 물씬 배어 나왔다. ‘C.S Kim’이란 이니셜과 태극기가 새겨진 국방색 배낭, 높은 산에서 다른 세상을 굽어봤을
검은색 쌍안경, 세상 끝까지 밟았던 그의 두 발을 찍은 청동부조,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육필원고, 아프리카 여행 중에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 찍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여행도서관에 들어서면 책 냄새와 여행가의 묵은 땀 냄새가 어우러진 향내가 풍겨 나온다.
이곳에는 그의 여행보따리에 함께 담겨져 왔을 손때 묻은 책과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여행 관련 책 등 1,300여권의 책들이 전시돼 있어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해안 절벽 끝에 위치한 문화원은 조망이 뛰어나 반나절 휴식처로도 손색이 없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자신이 꿈꾸고 있는 여행이 시작된다. 전망 좋은 노천 테라스카페에 앉아 짙은 향의
커피 한 잔을 마시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지중해의 한 섬에 앉아있게 된다. 은빛 날개 번쩍이며
푸른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와 기적소리 울리며 망망대해로 향해 나가는 선박들의 모습을 보면
잠자고 있던 역마살이 슬그머니 발동한다.
영종도 개발계획에 의해 이곳은 현재 공원부지로 수용돼 있다. 김장섭 원장은 “
우리나라 여행문화를 개척한 선친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은 여행가들의 교류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육적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며
“주변이 공원으로 개발되더라도 근린공원 안의 이색문화원으로 존속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 찾아가는 길
월미도에서 영종도 가는 배를 타고 구읍뱃터(선착장)에 내려 공항 가는 길 삼거리로 바로 접
어들면 모퉁이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 비포장도로로 조금 접어들면 정문이 나온다.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 산 75번지
나그네, 한옥에서 하루를 천년처럼 유(留)하다
조병수 가옥
용유초등학교 조금 지나 길을 물었다. “조병수 가옥이 어디에 있죠? ” “누구네 집?”
밭일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문화재명으로 여쭈었다가는 쉽게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바로
말을 바꾸었다. “이 마을에 오래된 집이 있다고 하던데요?” “아하, 그 옛날 집?” 할머니
손가락을 이정표 삼아 꼬불꼬불 논두렁길을 지나자 야트막한 산기슭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보였다.
개량 한복을 입은 남자가 두툼한 손을 내밀며 방문객을 맞는다. “내가 조병수 올시다.”
문화재 자료를 참고하면서 ‘조병수’라는 이름은 옛사람, 그러니까 이 마을의 현감 정도
지냈던 인물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간 것이 잘못이었다. ‘조병수 가옥’은 ‘가옥’이라는
단어 앞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붙여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이름이다.
대청마루에 올라 한쪽 벽면을 보니 그곳에 비로소 옛사람들이 있었다. 조병수 씨의
고조부, 고조모, 증조부, 증조모, 조부, 조모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끼운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 집은 고조할아버지가 1890년경에 지은 집이다. 120년에 걸쳐 5대가 살아 온 집으로
황해도 이남의 해안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중상류층의 가옥이다. 건평 60평으로
안채와 대문채가 연결된 ‘ㅁ’자 형태의 기와집이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드리 나무로 얹은 들보와 서까래, 반질거리는 마루바닥 그리고 뒤주와
벼루집 등 고옥(古屋)을 꾸며주는 각종 소품들이 정감을 준다. 다만 마루 한가운데
사각 테이블과 의자가 좀 거슬린다. 얼마 전에 영국사위를 맞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 논 것이란다. 이제 손님도 치렀겠다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라는 주인장의 설명이다.
여름을 재촉하는 바람결에 군불 지피는 냄새가 얹어 온다. 전날 비가 내려 사랑채 아궁이에
장작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차 한잔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옥예찬이 시작된다.
한옥은 우리 조상의 슬기와 삶이 배어 있는 우수하고 과학적인 건축물로 한국인의 삶을
담은 집이다. 한옥은 소통의 공간이다. 안방, 건넌방, 사랑방의 식구들이 마루에 모인다.
마루는 식당이요, 관혼상제의 공간이요, 휴식의 장소이기도 하다.
주인장의 한옥 예찬은 계속된다. “한옥은 ‘자연 환경과 함께 사는 집’입니다. 마루로 난
들창으로 자연의 세계와 연결되며 방방마다 달려있는 창문은 열기만 하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액자틀을 만들어 냅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자연일진대 어찌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까요. ”
조병수 가옥은 인천시 문화재자료 16호이다. 그렇지만 눈으로만 보는 문화재가 아니다.
객이 주인과 똑같이 먹고 잘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조 씨는 몇 년 전부터 국제공항이
있는 이 섬에서 우리 것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인 이곳을 손님들에게
개방했다. 손님들은 사랑방과 대문채에 하룻밤 유하면서 잃어버렸던 외갓집의
향수를 되새겨 본다. 외국인들은 자연친화적인 한옥과 우리 음식에 매료되어 집을
나설 때 어김없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먹고 자는 비용은 달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느낀 대로 지불하면 된다. 달리 홍보하지 않았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단골고객도 적지 않다. 지난 여름 앞마당에 있는 우물가에서 등목을 했던 사람들은 그 맛을 못 잊어 올해도 서둘러 예약하고 있다.
▶ 찾아가는 길
용유도로 들어가 먼저 용유초등학교를 찾는다. 학교 정문에서 10시 방향으로 길을 잡아 접어들어 약 920미터 가량 진행하면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천광역시 중구 남북동 86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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