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번 봄향기에 실려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4-10 11:46:06
104번 봄향기에 실려
유럽 복판의 작은 나라 체코에 국민적 음악가 두 사람이 있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이다. 드보르작이라고 하면 교향곡 9번을, 스메타나의 이름에서는 ‘몰다우’의 유연한 가락 ‘나의 조국’을 떠올린다. 두 사람 모두 음악으로 조국을 노래했거니와 한 사람은 국외에서, 한 사람은 국내에서 활약했다. 이를 테면 드보르작은 국외파요, 스메타나는 국내파이다. 그러나 국내라는 한계성 때문일까. 스메타나는 우리에게 조금은 덜 익숙하다.
드보르작은 1892년 51세때 뉴욕 국민음악원의 설립자 자네트 더버 여사의 초청으로 도미하여 그곳 원장을 맡는다. 그때 미대륙에서 받은 강한 인상을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와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 그리고 첼로협주곡 제104번에 실었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들의 음악적 특징을 담아 고국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향수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이 모두 그렇거니와 제104번은 특히 더하다. 고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지나칠 정도로 배어 있는 곡이 이 곡이다. 104번은 미대륙에 장기간 체류해 엄청난 향수병에 시달리면서 오선지에 옮긴 것으로 가장 인기있는 명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는 향수병자였다. 훗날 그의 사인조차 향수병의 결과로 보는가 하면, 뉴욕시절 수시로 부두에 나가 선박들의 국적별 크기와 속력 출항일 등을 암기했다는데 이 역시 향수병의 괴벽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곡을 감상하면서 노스탤지어에 빠져 흐느끼는 사람도 있다. 1980년대에는 104번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미국에서 드보르작의 세 곡이 탄생된 데에는 무명의 흑인 청년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해리 택커 버레이 박사이다. 그는 흑인영가 ‘Nobody knows’의 편곡자인데, 그가 뉴욕 내셔널 음악학교에 재학중일 때 드보르작을 만나게 되고 흑인영가를 들려주었다. 드보르작은 그를 만날 때마다 되풀이해서 몇 번이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10일 인천시향의 정기연주회에서 주연선 첼리스트의 104번 협연이 있으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