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약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11-29 22:47:00
조선 최초의 불꽃놀이는 개국 후 처음 맞는 새해 첫 날 한양의 하늘을 수놓았다고 전한다.
창업을 경축하는 행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꽃놀이는 여흥 외에 축사(逐邪)나 군사 조련 또는 화력 시범으로도 실시됐다. 불꽃놀이가 16세기 중반에 사라진 것은 화약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약을 자급자족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나 재래식 흑색화약뿐이어서 청나라, 일본 등으로 유학을 보내 신기술의 도입을 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개항 직후 인천의 무역상 세창양행이 신식 화약을 본격적으로 수입하였고 지금의 연수구 옥련동에 화약고를 설치했는가 하면, 경인선 등에 쓸 화약이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화약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화약 소비가 늘자 일본은 1935년 함남 흥남의 조선질소화약, 1937년 황해도 봉산의 천야카릿트, 1938년 해주의 조선화약제조, 1940년 인천 남동의 조선유지 등을 각각 준공하였다. 광복 후인 1947년 비로소 조선유지(주) 인천공장에서 우리 손으로 화약을 만들었으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후에 조선화약공판(주)에 근무하던 김종희(金鍾喜)가 한국화약(주)를 설립해 그룹으로 키워냈다. 지난 10일 남동구 고잔동 한국화약 옛 공장 터에서 '한화기념관'의 개관식이 있었다고 한다. 행사에는 현 그룹 회장과 사장단 40명이 참석했다는 보도였는데, 마치 '영지(領地) 안에서 저들끼리 벌인 잔치 소식'을 접한 느낌이었다. '한화(韓火)'가 지난 세월 이래저래 진 신세를 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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