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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재

양주성금속비(良柱星金屬碑)

by 형과니 2023. 6. 6.

양주성금속비(良柱星金屬碑)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종 목  시도기념물 

 

제13호 (중구) 

명 칭 양주성금속비(良柱星金屬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93.07.06

 

소 재 지 인천 중구  운남동 444-3 (동민회관 앞 비석군)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중구청

관 리 자 중구청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공보실

 

 

영종첨절제사를 지낸 양주성 선생의 공덕을 기리고 있는 비이다.

 

조선 고종 12년(1875) 8월 강화도에 침입하여 초지진을 공격하고 돌아가던 일본 군함 운양호가 도중에 영종진을 공격하며 뭍에 올라와 진을 점령하고 관아에 불을 질렀다. 이에 조정에서는 인천부를 방어영으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강화유수부에 속해 있던 영종진을 인천방어영에 속하게 하였으며, 10월에는 홍문관 제학 양주성을 영종첨절제사로 임명하여 관아를 복원하였다. 양주성은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관아를 복원하여 방비를 튼튼히 함과 아울러 선정을 베풀었는데, 그가 떠나게 되자 은혜를 잊지 못한 주민들이 놋그릇을 모아 이 비를 세우고 그 뜻을 기렸다고 한다.

 

긴 직사각형의 비는 윗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놓은 간결한 모습으로, 고종 15년(1878)에 세웠다. 원래 곤돌 고개마루에 있었던 것을 주민들이 동민회관 옆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이 비는 영종첨절제사(永宗僉節制使)를 지낸 양주성의 공덕비(功德碑)로 높이 91㎝, 폭 31㎝, 두께는 3㎝이다. 조선 고종 12년(1875) 8월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가 강화(江華)를 침입하여 초지진(草芝鎭)을 포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영종진(永宗鎭)을 포격하는 동시에 상륙하여 진을 점령함으로써 진해(鎭해)가 소실되었다. 이에 따라 조정(朝廷)에서는 인천부(府)를 방어영(防禦營)으로 승격시켜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에 속했던 영종진을 인천 방어영에 예속시키고 홍문관(弘文館) 제학(提學) 양주성을 영종첨절제사로 임명하여 진사(鎭舍)를 복원하였다. 진사를 복원하여 방비(防備)를 튼튼히 하고 선정(善政)을 베푼 양주성이 떠나자 주민들이 놋그릇을 모아 이 비를 세우고 그 뜻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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