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양건축의 비조 사바친 베일 벗어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1-31 15:23:23
한국 서양건축의 비조 사바친 베일 벗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대문의 독립문과 정동의 러시아공사관, 덕수궁의 석조전을 비롯한 조선 근대 주요 서양건축물의 설계자. 1895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하게 시해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서양인 2명 중 한 명.

세레진 사바친(1860-1921)은 이처럼 한국 서양건축의 비조이자 한국 근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임에도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에 대한 단편적인 증언이나 기술도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사바친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러시아 국립인문과학대학 타치아나 심비르체바 박사는 24일 오전 10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국제한국사학회(공동대표 박정신 숭실대 교수) 제4회 월례발표회에서 발표할 논문 '조선국왕폐하의 건축가 사바친'을 통해 사바친의 자세한 출생과 이력을 구명한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도시계획연구소 스베틀라나 레보쉬코 박사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를 통해 사바친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정식 건축학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비정규 학교인 '해양강습소' 출신자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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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친의 출신과 관련, 서재필은 그의 자서전에서 독립문 설계자를 스위스인 기사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공동 연구를 벌여온 심비르체바 박사는 사바친이 출신은 우크라이나이지만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여러 국가의 혈통을 물려받은 국제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따라서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설계자를 스위스 기사라고 언급한 대목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바친은 임오군란 뒤인 1883년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외교고문으로 한국에 부임할 때 그를 따라 들어와 활동하다가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했으며, 이후 일본과 중국 등을 전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공동연구 과정에서 사바친 아들이 쓴 사바친 전기와 그의 사진 등 자료도 발굴됐다. 이들 자료는 미국에 거주하는 사바친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발굴한 자료 중에는 사바친 사진 외에도 인천에 있던 사바친의 집 사진이 포함돼 있고, 더불어 국내에는 잘 알려진 것이기는 하지만 고종과 순종이 함께 찍은 사진은 사진 촬영자와 촬영 연대를 고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바친은 국내 기록에는 '살파정'(薩巴丁), 혹은 '살파진'(薩巴珍)이라는 표기로 등장하며 한국 최초의 서양인 건축가로서 독립문과 러시아공사관, 석조전 외에도 손탁호텔, 덕수궁의 정관헌ㆍ중명전ㆍ돈덕전ㆍ구성헌, 경복궁의 관문각, 인천의 세창양행과 해관청사 등을 설계했다.
이 중 관문각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내에 있었던 건물로 경복궁 내에서는 보기 드문 서양식 건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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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친은 1895년 10월8일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들에게 희생될 때 황제를 보호하는 시위대에서 미국인 교관 다이 장군과 함께 부감독관으로서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바친>>
<<인천에 있던 사바친 집>>
<<1923년 러시아공사관>>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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