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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재

화도진지(花島鎭址)

by 형과니 2023. 6. 8.

화도진지(花島鎭址)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종 목  시도기념물  제2호 (동구) 


명 칭 화도진지(花島鎭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20,667㎡
지 정 일 1990.11.09
소 재 지 인천 동구  화수동 138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동구
관 리 자 동구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동구 문화공보실 032-770-6104


진은 진영(鎭營)을 줄여 부르는 말로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관제의 하나이다. 화도진은 조선 후기 자주 나타나는 서구의 함선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화도진의 설치는 인천 항구의 개방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비하여, 조정에서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만들도록 하여, 1879년 완성되었다. 그러나 갑오개혁에 따른 군대 관리제도 개혁으로, 진이 철폐되고 건물도 철거되었다.

 

진은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관제(地方官制)의 하나로, 진영(鎭營)을 줄여 부르는 것으로 진영장의 품계(品階)에 따라 주진(主鎭)·거진(巨鎭)·제진(諸鎭)이 있었으며, 화도진은 만호(萬戶)·도위(都尉)가 주재하는 제위에 속한다. 화도진 설치는 인천을 개항 후보지로 요구할 것에 대비하여 조정(朝廷)에서 어영대장(御營大將) 신정희(申正熙)와 강화유수(江華留守) 이경하(李景夏)에게 명하여 축조토록 하였으며 1879년 완공되었다.

 

진 설치이후 개오개혁에 따른 군제(軍制) 개혁으로 진은 철폐되고 건물도 철거되었으나 1982년《화도진도(花島鎭圖)》에 의해 옛 건물을 복원하였다. 특히 이곳은 1882년 5월 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韓美修好通商條約)과 동년 6월 한영(韓英)·한독(韓獨)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