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교대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5-31 15:40:13
경인교대
조우성의 미추홀( 580 )
'인천사범학교'는 6·25전쟁 때 개성에서 온 '피난지 학교'였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개성사범학교'로 설립돼 1950년 4월 국립으로 승격했는데, 전쟁통에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1952년 비로소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현 남구청 일대에 자리잡은 '인천사범'은 조낙연 교장을 비롯한 교사 23명, 재학생 800여 명으로 재출발해 1953년 졸업생 174명을 배출하고, 교지 '사우(師友)'를 복간하는 등 '사도육성'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들으라, 어둠 속에 무지의 아우성/이 무리 깨워줄 이 그 누구런가/사랑에 얼크러진 인사의 건아/우리는 새 시대의 등불이로다"는 교가처럼 '인천사범에의 진학'은 청소년들에게 시대적 소명의 실천이기도 했다.
인천지역 초등교원 양성소의 상징인 '인천사범'이 교명을 '인천교육대학'으로 바꾼 것은 1962년이었다.정원 400명, 10학급 규모로 같은 해 3월 1일 한상봉(韓相鳳) 초대 학장이 취임해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인천교대'가 남구 숭의동 시대를 접고, 계양구 계산동에 새 캠퍼스를 마련한 것이 1990년이고, 4년제 '인천교육대학교'로 바꾼 것이 1993년이었다.
2003년에는 또다시 교명을 '경인교육대학교'로 변경했다. 경기도에 또다른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던 모양인데, 최근 학부기능까지 옮긴다고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대학이 현대유니콘스(프로야구단)처럼 경영(흥행)만 고려해 훌쩍 연고지를 버린다니 유감이다. 한편으론 '개성사범' 이후 아직도 '떠돌이 신세'를 못 면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재고하기 바란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