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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팔미도 등대와 6월 이야기

by 형과니 2023. 4. 11.

팔미도 등대와 6월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6-30 00:05:59

 

팔미도 등대와 6월 이야기

 

기고 - 전재천 인천해수청 주사 

 

19세기 말, 인천에 각국의 정치·경제적 거점을 마련해 이권을 챙기려던 열강들이 앞다퉈 개항장 인천을 찾았다.

제일 먼저 눈독을 들인 나라가 일본이었다. 1901, 침탈 야욕을 불태우던 일본은 개항되던 해 우리 정부와 체결한 '통상장정''한국 정부는 통상 이후 각 항을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를 설치한다'고 한 조항을 들어 등대 건설을 강권했다.

 

결국 정부는 강권에 못이겨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 해 5월부터 팔미도, 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 백암등표 건설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19036, 우리나라 최초로 팔미도 등대가 완공됐다.

 

팔미도는 면적이 0.076의 작은 섬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인천항에서 13.5남쪽 바다에 있다. 해발 58m의 산꼭대기 근처에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 등대는 현재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항선들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6·25 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게 함정들의 밤 바닷길을 밝혀주기도 했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팔미도 등대가 노후화하자 해양수산부는 2003년에 등탑과 사무실이 같이 있는 연면적 187.5평 규모의 새 등대를 착공했다.

 

높이를 7.9m에서 23.6m로 높이고 광학적인 빛의 세기도 크게 강화해 더 멀리까지 뱃길을 안내할 수 있게 됐다.

 

팔미도 등탑은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 40호 및 해양수산무 등대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돼 원형 그대로 보존되며 참전용사들이 다시 찾는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등대섬 팔미도는 아직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한 군사지역에 있지만 역사적인 큰 사건의 획을 그은 등대인 만큼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매년 학생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등대체험 행사'를 실시해 왔다.

 

다소 늦었지만 마침 6월이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와 6·25 전쟁, 열강의 각축 시절 사이에 얽힌 뒷 얘깃거리를 소개해 봤다./전재천 인천해수청 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