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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백범 동상 이전 늦었지만 다행

by 형과니 2023. 4. 12.

백범 동상 이전 늦었지만 다행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7-31 00:11:24

 

백범 동상 이전 늦었지만 다행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면서도 인천에서 두 차례나 수감생활을 하는 등 인천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어머니 곽낙원 여사도 인천에서 품팔이를 해가며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첫번째는 189621세 때 일본인을 죽이고 해주 감옥에 투옥됐다가 인천 감옥으로 이송돼 미결수로 감옥 생활을 시작했는데 감옥에서 책을 통해 서양 근대문물을 접했다고 한다.

 

1898년 탈옥, 삼남으로 도피했다가 1900년 강화에서 잠시 훈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11년 일본 헌병에 체포돼 1914년 인천 감옥으로 이감되면서 두번째 수감 생활에 들어갔는데 매일 쇠사슬에 묶인 채 인천항 축항공사에 동원됐다고 한다.

 

다행히 이듬해 가출옥으로 풀려나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됨으로써 해외에서의 기나긴 독립투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인연 등으로 백범 동상은 지난 1997년 곽여사의 동상과 함께 인천대공원 내 관모산 등산로 입구에 세워졌고 매년 추모행사도 갖고 있다.

 

인천시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가 백범 동상을 2009년 인천세계도시엑스포 개최 이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합의하고 이전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간 뜻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백범의 동상이 인적이 드문 인천대공원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끊임없이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로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자유공원, 송도국제도시 내 중앙공원 등 세 곳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인천문예회관은 많은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공원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송도국제도시는 미래도시 인천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세 곳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때문에 장소를 너무 서둘러 결정할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등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많은 시민과 청소년이 백범 동상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된다면 백범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도 자연스레 가슴 속 깊이 스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