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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인물

그리운 금강산 작사자 한상억의 빈소

by 형과니 2023. 4. 13.

「그리운 금강산」作詞者, 韓相億의 빈소」 者

참성단 이상규칼럼

(92. 11. 11) 

 

우리는 때때로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을 잊고 사는 경우가 있다. 특히 仁川 市民의 경우에 있어서는 韓相億씨와 崔亨燮씨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제는 겨레의 노래가 되다시피한 「그리운 금강산을 들으면서도 이 아름다운 노랫 말을 누가 지었으며 이 아름다운 곡을 누가 썼는지 모르고 흥얼거린다.

 

▼이 두 사람이 江華郡 출신이라는 것도, 이 두 사람이 仁川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며 활동했다는 것도 모른다. 仁川 市民이라면 꼭 기억해 둬야할 사람인데 市民들은 이 두 사람을 잊고 산다. 仁川藝總 사무실에 마련된 韓相億씨의 빈소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별로 찾는 이가 없는 빈소, 그러나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 말과 멜러디는 끊이지 않고 흘렀다.

 

▼이야기는 꼭 30년전 (1962)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화도가 고향인 崔亨燮씨는 그때 仁川女中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崔씨는 KBS로부터 祖國의 산천을 찬미하는 곡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崔씨는 고향 친구이자 당시 文總 仁川市支部 위원장을 맡고 있는 韓相億씨에게 아름다운 내 강산을 찬양하는 詩를 지으라고 부탁했다.

 

▼仁川公立商高를 나오고 56년에 自由文學誌에 「평행선」을 발표, 문단에 등단한 韓씨는 한달만에 아름다운 내 江山란 큰 主題의 詩를 완성시켰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운 금강산」,

 

『누구의 주제런가/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 이천봉/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 만민/옷깃 여미며/그 이름 다시 부른/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더럽힌지 몇해/오늘날에야 찾을 날 왔다/금강산은 부른다.

 

▼韓씨는 63년에 藝總 京畿道 支部長을 맡아 仁川文壇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다가 미국 LA로 이주했다. 그 韓씨의 부음을 받고 愼태범씨등 元老들이 仁川에 빈소를 차렸다. 비록 조문객이 많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기억해야 할 韓씨의 빈소에 시민들의 꽃송이가 쌓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https://youtu.be/z4W3B0EUZ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