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광철의 전망차

영혼의 노래

by 형과니 2023. 4. 24.

영혼의 노래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4-21 02:04:42


영혼의 노래


아펜젤러는 우리나라에 온 첫 선교사이다. 1885년 4월5일 언더우드와 함께였다. 당시 선교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오는 선교사들은 비상한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아직도 천주교도의 무서운 박해가 있은 지 10여년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기독교 선교는 여전히 금지되고 있었으며 나라의 개국도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은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뎠다. 특히 아펜젤러는 갓 결혼한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때의 상륙 장면을 아펜젤러는 선교본부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부산을 출발, 제물포로 향했다. 춥고 비내리는 좋지않은 날씨였다. 이런 날씨가 여행기간 계속되느라 배는 느릿느릿 나아갔고 심한 뱃멀미를 오랫동안 겪어야만 했다. 우리는 반도의 남단을 돌아 서쪽해안을 올라가 이달 5일 일요일 정오에 한강입구로 들어왔고 오후 3시에 이곳 제물포항에 닻을 내렸다. 이곳의 강은 넓고 얕아서 상륙하기 위해 거룻배를 타고 3마일쯤 나와야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배가 닿자 백여명이나 되는 누더기를 걸친 인부들이 화물을 향해 덤벼들었다고 한다. 인부 한사람에게 짐을 옮기라 해놓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로 향했다고 한다. 이것이 훗날 중화루라고 이름한 중국요리점이 된 다이부쓰호텔이었다. 방은 편안하고 넓었으나 약간 싸늘했다. 식탁에는 잘 요리되어 입에 맞는 서양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후 1902년 목포로 향하던 아펜젤러는 조난사고로 순교하고 그 자녀들도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로 활약한다. 우리나라의 첫 백인 출생자인 장녀 알리스 레베카는 이화여대 명예총장을 지내다 1950년 별세했으며 외아들 헨리 닷지 역시 6·25를 한국에서 겪으며 배재학교를 위해 애썼다. 이들 남매는 지금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잠들어 있다. 소설가 정연희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양화진’에서 “아펜젤러 목사의 이야기는 영혼의 노래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오광철의 전망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심당 효행표  (0) 2023.04.24
추억하는 공원  (1) 2023.04.24
장수천에 생명력을  (0) 2023.04.24
훈장 찾아주기  (0) 2023.04.24
연평파시는 언제나  (0)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