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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

강화-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by 형과니 2023. 3. 12.

강화-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1:00

 

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예로부터 강화도에는 목장이 많았다. 전쟁 때 쓰기 위한 말을 그곳에서 길렀다. 그 중에서도 양도면 진강산의 목장은 명마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진강산의 말은 용맹스럽고 영리한 데다 달리는 것이 바람과 같았고 온 몸은 흰색인데 비해 갈기와 꼬리는 푸르스름한 색깔을 띤 모습이었다.

 

1636,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다(병자호란). 이때 우리 나라에서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갔다. 멀리 적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돌아온 봉림대군은 뒷날 효종으로 즉위하자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우리 정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강화도를 임시 피난처로 정했다. 자연히 이곳에는 여러 군데의 성곽과 군사진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효종 임금은 자주 강화도를 찾으면서 청나라를 칠 방법을 생각했고, 이때마다 임금을 모시는 일은 강화도 진강산의 명마가 맡았다. 임금은 이 말에게 벌대총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흰 빛에 푸른색을 띤 말이란 뜻이었다. 그는 이 벌대총을 타고 강화도를 오가며 다짐했다.

 

나는 이 벌대총을 타고, 청나라의 서울까지 쳐들어가서 반드시 그때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강화에서 한양까지 임금을 모셔드리고 돌아오던 벌대총이 갑자기 졸도했다. 양천(지금의 서울 양천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임금이 가장 아끼던 말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다. 고을 원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벌대총을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 그러나 가느다란 숨만 내 쉬던 말은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임금이 가장 아끼던 말이 죽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큰 걱정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곧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벌대총이 죽은 사실을 임금님에게 알리지 맙시다. 더 좋은 말을 찾아서 다음 번 임금님이 강화도로 가실 때 모시게 하면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임금님은 그 말을 특별히 사랑하시어 벌대총이라는 이름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읍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후 고을 원님이 말했다.

 

죽은 말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임금님께 보고 드리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고을 원님은 곧 궁궐로 향했다. 그는 궁궐에 도착할 때까지 벌대총이 죽은 사실을 임금님에게 어떻게 보고할까 골똘히 생각했다. 얼마 후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원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감마마, 마마께서 아끼시던 벌대총이 누운 지 사흘이며, 눈감은 지 사흘, 그리고 먹지 않은 지 사흘이 되옵니다.”

 

벌대총이 죽었다는 것을 바로 말씀드릴 수 없었던 원님이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임금은 크게 놀라며 궁궐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아니 벌대총이 죽었다는 말이냐? ! 벌대총을 타고 청나라를 치려는 나의 뜻을 하늘이 버리시는구나.”

 

임금은 벌대총이 죽은 것을 백성들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뜻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가리켜, ‘양천 원님 죽은 말 지키듯 한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