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1:00
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예로부터 강화도에는 목장이 많았다. 전쟁 때 쓰기 위한 말을 그곳에서 길렀다. 그 중에서도 양도면 진강산의 목장은 명마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진강산의 말은 용맹스럽고 영리한 데다 달리는 것이 바람과 같았고 온 몸은 흰색인데 비해 갈기와 꼬리는 푸르스름한 색깔을 띤 모습이었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다(병자호란). 이때 우리 나라에서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갔다. 멀리 적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돌아온 봉림대군은 뒷날 효종으로 즉위하자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우리 정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강화도를 임시 피난처로 정했다. 자연히 이곳에는 여러 군데의 성곽과 군사진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효종 임금은 자주 강화도를 찾으면서 청나라를 칠 방법을 생각했고, 이때마다 임금을 모시는 일은 강화도 진강산의 명마가 맡았다. 임금은 이 말에게 ‘벌대총’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흰 빛에 푸른색을 띤 말이란 뜻이었다. 그는 이 벌대총을 타고 강화도를 오가며 다짐했다.
“나는 이 벌대총을 타고, 청나라의 서울까지 쳐들어가서 반드시 그때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강화에서 한양까지 임금을 모셔드리고 돌아오던 벌대총이 갑자기 졸도했다. 양천(지금의 서울 양천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임금이 가장 아끼던 말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다. 고을 원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벌대총을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 그러나 가느다란 숨만 내 쉬던 말은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임금이 가장 아끼던 말이 죽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큰 걱정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곧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벌대총이 죽은 사실을 임금님에게 알리지 맙시다. 더 좋은 말을 찾아서 다음 번 임금님이 강화도로 가실 때 모시게 하면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임금님은 그 말을 특별히 사랑하시어 벌대총이라는 이름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읍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후 고을 원님이 말했다.
“죽은 말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임금님께 보고 드리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고을 원님은 곧 궁궐로 향했다. 그는 궁궐에 도착할 때까지 벌대총이 죽은 사실을 임금님에게 어떻게 보고할까 골똘히 생각했다. 얼마 후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원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감마마, 마마께서 아끼시던 벌대총이 누운 지 사흘이며, 눈감은 지 사흘, 그리고 먹지 않은 지 사흘이 되옵니다.”
벌대총이 죽었다는 것을 바로 말씀드릴 수 없었던 원님이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임금은 크게 놀라며 궁궐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아니 벌대총이 죽었다는 말이냐? 아! 벌대총을 타고 청나라를 치려는 나의 뜻을 하늘이 버리시는구나.”
임금은 벌대총이 죽은 것을 백성들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뜻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가리켜, ‘양천 원님 죽은 말 지키듯 한다’ 라고 말한다.
'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이 입 모양의 호구포 (2) | 2023.03.13 |
---|---|
신도의 효자와 선녀 (0) | 2023.03.13 |
문학,청학-이별하던 가슴 아픈 삼호현 (1) | 2023.03.12 |
대청도의 시조 신황이 (1) | 2023.03.12 |
부평-한다리의 구렁이 (1) | 202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