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동-삼정승을 만든 명당자리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3 00:20:11
영종도에 아들은 죽지만 그 세 손자가 정승을 지낸다는 뜻의 무자 유손이란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어느 양반집의 주인이 죽었지만 마땅한 산소 자리를 잡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름 모를 지관이 한 곳을 가리키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 자리는 삼정승이 나올 자리가 분명한데 액운이 끼어 장례를 치른 초상 세 달째에는 큰아들이 죽고 다음해 소상에는 둘째아들이 죽고 대상에는 막내아들이 죽을 것이다.”
상주는 지관이 내뱉은 이상한 소리를 곰곰이 생각했다.
“삼정승이 난다는 소리는 좋은 일이지만 우리 삼형제들이 죽는다는 것은 불길하다. 어쨌건 좋은 산소 자리라는 게 아닌가.”
하며 그곳을 산소 자리로 정하기로 했다. 장례가 끝나고 세 달이 되던 날, 큰아들이 저녁밥을 먹고 난 후 갑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바로 죽어 버렸다.
이듬해 새벽 제사를 지내고 나서 둘째아들도 갑자기 죽었다. 죽은 큰아들과 둘째아들 모두 자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셋째인 막내가 남았는데 그의 형들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시집을 오겠다는 여자가 없었다.
“어머님!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지관의 예언이 맞는 것 같습니다. 큰형과 작은형 모두 자식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이제 제 차례인 것 같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어머님 슬하를 떠나서는 안 되겠지만 이왕 죽을 몸, 살아 있는 동안 팔도 강산이나 구경하고 돌아올 테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어머니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데다 손주도 하나 없이 막내아들마저 집을 떠난다면 과부가 된 며느리 둘과 늙은 시어머니 셋이 쓸쓸하게 이 집을 지켜야 할 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막내아들의 간절한 애원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간편하게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선 막내아들은 정처 없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 길조차 분간할 수 없던 차에 멀리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발견했다.
“옳다구나!”
하고 찾아간 막내아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서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밤도 늦고 길도 잃어 쉴 자리가 없었는데 불빛이 있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저 비바람을 가리며 하룻밤 쉬어 가게 해 주십시오.”
할머니는 막내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들어오라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할머니는
“총각, 고단하지? 내가 오늘 저녁에 고개 넘어 우리 친정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올 테니 혼자서 편히 쉬게.”
막내아들은 할머니가 나간 후 금방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후 깊은 밤에 웬 아가씨가 막내아들이 자고 있는 이불 속으로 쏙 들어와 막내아들을 껴안았다. 다음날 할머니가 문 앞에 놓인 신발 두 켤레를 보고는 말했다.
“누가 또 왔나? 총각 편히 쉬었어?”
할머니의 말에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며 문을 박차고 나와 할머니에게 덥석 안기었다.
“어머나! 유모 저 사람 누구야? 난 유모인 줄 알았는데.”
근처 대감댁의 고명딸인 아가씨는 며칠 후 시집을 가는데, 그전에 어려서부터 자기를 키워준 유모 할머니를 만나러 왔던 것이었다. 이불 속에서 밤새도록 껴안고 잔 사람이 유모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유모가 밖에 있으니 난감할 뿐이었다. 게다가 옆에 있던 사내가 죽어 있었으니 어찌할 줄을 몰랐다. 어젯밤이 마침 죽은 막내아들 아버지의 제삿날이었으니 지관의 말이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아가씨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가 겪은 일을 아버지에게 소상히 알렸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말했다.
“시집을 가기 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이 이야기가 문 밖으로 넘어서지 않으려면 네가 죽는 수밖에 없다.”
하나뿐인 딸이 죽는 꼴을 보게 된 어머니는 남편에게 딸의 목숨만은 살려 주자고 간청했다. 결국 집에서 쫓겨난 아가씨는 막내아들의 호패를 갖고 그의 집을 찾아 나섰다. 어렵사리 막내아들 집을 찾아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소상히 알리고 네 과부가 함께 살았다. 초상을 치른 뒤 얼마 지나지 않자 막내며느리가 입덧을 했고 몇 달 뒤에 아이를 낳았다. 첫 번째 진통이 시작되자 큰 며느리가 말했다.
“이 애가 계집아이든 사내아이든 내가 기르겠습니다.”
이어 두 번째 진통이 시작되자 둘째 며느리가 말했다.
“이 아이는 내가 맡겠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빼앗긴 막내 며느리는 지친 몸으로 허망하게 누워 있는데 갑자기 한 차례의 진통이 있더니 셋째 아이를 낳았다. 이렇게 하여 과부가 된 며느리 셋이 모두 자식을 한 명씩 맡아 기르게 되었다. 하지만
“과부의 자식 버릇없다”
는 옛말처럼 아이들이 제멋대로 굴었다. 막내 며느리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잘못 자랄까 싶어 딸과 사부인인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사부인, 이런 말씀드리기 참 어렵지만 후세를 생각한다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교육을 시켜 큰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할머니는 흔쾌히 승락을 했고 그 후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은 모두 정승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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