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마지막 DJ 한영우
仁川愛/인천의 인물
2011-04-08 13:32:28
그는 오늘도 LP판을 건다
인천의 마지막 DJ 한영우
손때 묻어 모서리가 닳은 LP판이 빼곡히 들어찬 부스, 한쪽 벽면에는 당대를 풍미한 뮤지션들의 사진과 음반 포스터가 붙어 있다. DJ가 종이재킷 안의 비닐커버를 열어 까만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건다. 이윽고 LP판이 느리게 돌아가며 음악이 흐른다. 간간히 튀는 잡음도 들린다. CD와 MP3를 타고 흐르는 매끄러운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아날로그 음악은 순수하고 진솔하며 인간적이어서, 귀를 타고 마음에 스며들어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방송인 한영우는 스스로를 ‘이 시대의 마지막 DJ’라고 말한다. 현재 경인방송과 교통방송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7,80년대 인천 다운타운을 평정했던 흑백다방과 심지음악감상실에서 DJ로 활동했다. 이들 음악감상실은 당시 인천에 살던 젊은이들이 모여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공유했던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그네들은 그 안에서 음악을 듣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낭만이 있어요. 기계가 아닌 목소리에서만 비롯된 음악은 힘이 있었고, DJ는 그 음악에 진솔한 이야기를 더해 감동을 전했지요. 젊은이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장소라고는 음악감상실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의 나즈막한 목소리를 따라 시공간을 거슬러 7,80년대 동인천역 부근 작은 음악감상실로 간다. 가수의 목소리에만 기댄 진실어린 음악이 느리게 부유하고, 시(詩)와 같은 노랫말과 따듯한 선율이 가슴 깊은 곳을 적신다. 부스 탁자 위는 신청곡과 사연을 정성스레 적어 내린 메모지가 붙어있다. 간혹 DJ에게 수줍게 자기마음을 고백하는 소녀도 있었겠지.
시간은 흐르고 그때 그 기억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7,80년대 포크음악 이른 바 ‘세시봉 세대’의 음악이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흐르고 있다. 삭막한 세상, 사람들은 그 옛날 순수하고 따듯한 감성이 그리워 다시 낡은 음악을 찾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래된 진짜 음악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인천의 마지막 DJ 한영우는 오늘도 턴테이블에 LP판을 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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