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잡지 별건곤 -복 혜숙 석금성 이경설 원우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1-05-02 17:51:09
잡지명 별건곤 제45호
발행년월일 1931년 11월 01일
기사제목 劇場 紅唇曲, 女俳優들의 이 모양 저 모양
필자 李瑞求 이서구
기사형태 소식
劇場 紅唇曲, 女俳優들의 이 모양 저 모양 (극장 홍진곡, 녀배우들의 이 모양 저 모양)
李瑞求
「귀여운 손님이 오시엿는데 「도리꼬노」이나 한 잔 드려야지!」
하며 그는 유리 찬장속에서 그의 애인이 그의 건강을 위하야 사다 주엇다는 자양제를 한 잔을 따라 나에게 권한다.
『흥 이런 것 어더 먹다가 입이나 아니 부르틀까.』
하며 꿀물에 포도집을 탄 것 가튼 달콤한 물을 한 잔 마신 일이 잇섯다.
「요전에 독견 선생이 오시엇슬때에는 두 잔이나 마사엿는데 한 잔 더 마시지 안으랴오.」
그는 다시 「도리 꼬노」 병을 드는 것을 나는 고개를 가로 흔드럿다.
『독견 녀석도 욕심꾸럭이로군!』
나는 픽 우서바렷다.
『혜숙 아씨 임원회의를 하신다고 곳 오시래요.』
권번의 하인인가 보다. 굽슬굽슬한다.
『응 지금 서울 손님이 오시엇스니까 조금 잇다가 곳 간다고...』
코 대답이다. 무대 꼿의 일시는 그 일홈이 팔도에 나 붓기든 인테리 녀배우 복헤숙은 제 삼화 기생영업을 인천에다가 버리고 잇는 것이다. 그가 유일 선씨의 집 일개의 귀여운 목사의 딸로 길니울 때와 지금의 말성꾸럭이 억척 대장이 된 지금과를 아울너 아는 사람은 눈물도 흘닐 것이다.
그가 세 번재=처음은 개성 다음은 경성 지금은 인천=기생이 된 뒤 그는 단연히 기생으로서의 천직을 다하야 외국의 선객을 자조마저 드리는 인천에서는 그야말로 사교게의 꼿이 되야잇다. 더욱히 룡동 권번의 남자 임원들의 부정행위를 적발하야 적년의 페습을 깨치고
「우리의 권번은 우리가 경뉸하자」
는 새못토아래 단연히 룡동 권번의 권위가 되야 잇는 것도 그의 말년에 잇슴즉한 일이다. 요사히는 목포 어느 부호와 살님을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내가 보지 못하얏스니 밋지는 못할 일이다.
『연극을 한 번 다시 해 보시지요.』
나는 단성사 사무실에서 석금성 녀사를 맛나 이기튼 말을 햇다.
『글세요... 그러치만 젓먹이가 잇서서...』
아조 실타는 대답은 아니엇다.
『아-애리스도 애기를 다리고 남편되는 리광렬군까지 함께 세식구가 연극시장에 따라다니지 안습니까. 요사히는 젓먹이 애기를 다리고 다니는 것이 새 류행인 모양이 드구면요.』<18>
나는 쌩끗 우섯습니다.
『아이고 머니나 별 류행이 다 만습니다 그려. 그럿치만 우리 사랑 양반은(문사 최승일군) 밤낫업시 승희(무용가 최승희가 승일군의 누이이다.) 지방 흥행에 따라 다니시니까 집에 게신 날 이라야 몃칠 되지도 안는답니다.』
좀 쓸쓸하야 젓다.
그러면 더욱 조치 안켓습니까.
내 뜻은 목하 단성사에 공연준비중인 신무대에 입단을 하라는 뜻이다.
『글세 올시다. 엇더케든지 되는대로 하지요.』
하며 배경사 원우전 군을 차차 무대뒤로 드러가 바렷다. 그가 사라진 뒤에 단성사 서무간부 박정현 군은 생끗 우스며
『그러지 안아도 신무대에 약속이 잇서서 온 모양이올시다.』
올타 그러면 그럿치... 나는 혼자 우섯다. 이글이 잡지에 날때까지에는 필경 석금성 녀사는 다시 무대의 사람이 될 혐의가 매우 농후하야젓다.
『삑타 취임은 어느때 되느냐.』
이가튼 전보가 진주 흥행중인 연극시장의 인긔스타- 리경설양에게서 왓다. 답전을 해야 그의 수중에 드러갈 것 갓지 안아서 나는 시침을 딱 떼고 잇다. 취임할 림서라야 쪼쳐가서 담판을 하는게 유일한 방책인 줄 밋는 까닭이다.
『리선생 녀배우 생활도 인제 고만 실증이 낫스니 아담한 차점이나 하나 벌려볼까.』
이가튼 소리를 드른 일이 잇다. 「락원」이라는 카페가 생기자 일홈잇는 녀자들이 녀급사로 출전을 하야 세상을 놀낼 때 연극 시장은 경성공연을 하고 잇섯다. 어느날 밤 단체의 간부들의 회의가 잇섯는데 그 장소를 락원으로 정하야 모-던 긔분을 맛 본일이 잇섯다. 그 때 경설군은 나를 꾸지즈며
『내가 만일 이런데 와 잇스면 세상은 무엇이라고 할까.』
나의 대답을 재촉하얏다.
『글세 당분간은 잘 팔니겟지...』
나는 긔운업는 대답을 하얏다.
『에이 시려 사내놈들은 모OO 이니까.』
몸서리를 치는 그의 태도는 매우 진실하얏섯다. 지금 지방 순회중에 잇는 리경설양은 임의 극단의 빈약한 점과 탄력업슨 생애에 권태와 증오를 늣겨서 마지 안코 잇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랑이냐?
돈이냐?
지금의 리경설은 머리를 알코잇다. 긔에찬 지금의 생애에 신국면을 타개하고자 고민을 하고잇다. 삑타-에 취임시긔를 뭇는 것도 그의 국면타개 운동의 선구로 볼 수 밧게 업다는 것이다.
『아이고 머니 우리 명예(名譽)가 차저 오시엇구려.』
상해에서 오래간만에 도라온 리월화군은 익선동 오막사리집 대문이 뿌듯하게 마지를 해 주엇다.
그는 나를 십년전부터 「명예」라고 부른다. 명예고문인지 명예 애인인지 명예 충복인지 아즉 그 정의는 모르나 엇잿든 명예직인 이상 나에게 리익이 업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그래 상해자미가』
무럿드니 그는 손을 가로저으며
『아서... 아서 뭇지 말일 뭇지 말일...』
그는 연극배우의 어투와 표정을 쓰며 나의 입을 막고 우슴을 터트려 바렷다. 경성의 남아잇는 칠십 로모를 차마 못니저 상해에서 일년에도 두 세 번씩은 경성에 도라온다. 이번에 와서도 약 일주일 동안 묵어갓다.
『아아 이번 행보에 월화가 쓴 돈이 사백원은 될껄.』
하며 그의 풍족히 돈을 쓰게된 처지를 부러워하는 녀자도 잇섯다.
『상해서 무엇을 해서 그러케 돈이 생길까.』
걱정스럽게 뭇는 이도 잇다.
『딴사- 노릇을 한 대.』
하며 의아한 눈을 뜨는 사람도 잇다. 엇잿든 부활의 「카쮸샤」로 일약 일류 명배우가 되야 복헤숙 석금성 두 녀배우와 함께 토월회의 꼿 노릇을 하든 그는 조선에서는 몸 붓칠 곳이 업서 상해로 까지 흘너가고 마랏다. 누가 그를 조선서 내쫏찻나. 내쪼친 범인을 나는 잘 안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으로해서 고국을 떠나바렷다면 평범한 통속소설 재료 밧게는 아니되겟스나 사실을 어대까지든지 사실이다. 목슴을 다하야 위해오든 총각 한 분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나더니 슬적 색시장가를 드러바렷다.<19>
「너가튼 더럽힌 게집을 정실부인으로 삼을 수가 업다.」
는 드시 색시장가를 드럿다.
『내 몸이 임의 더럽흰 것 만은 사실이니 하는 수 업소.』
눈물 한점 아니 흘니고 소리 한 번 크게 아니 질으고 인천 부두에서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나가든 그의 가슴속을 살피면 공연히 서러진다.
『아- 신은봉이 하고 리경환이 하고 이혼을 햇다지...』
젊은이들의 입에서는 이가튼 소리가 들렷다.
『글세 따는 그런지 모르지 연극사와 연극시장과는 경성공연을 가치 여러 가지고 불이 날뜻이 경쟁이 부텃는데 남편되는 리경환은 연극시장에 잇고 안해되는 신은봉은 연극사에 잇스니 그러케 말도 낫겟는걸.』
이가튼 추측이 일반팬의 머리에 가득찬 일이 잇섯다.
은봉군! 연극시장으로 남편을 따라 오든지 숫제 남편되는 리군을 연극사로 도로 다려가든지 양단간에 작정을 하는게 급선무요.』
나는 단성사 이층 사무실 압헤서 신은봉군을 붓잡고 최후의 담판을 지엇다.
『네 꼭 요다음 프로부터는 남편을 따라 연극시장으로 오겟습니다.』
그는 이래 입살을 힘잇게 움즉엿다.
『자- 그럼 신군의 환영프로를 짜아두지.』
나는 이말에 대한 약속을 시행키 위하야서 「祖國의 愛人」이라는 역사극을 집필 하얏섯다. 그러나 오마든 신군은 오지 안코 리경설군이 대역을 하야 손에게 대 갈채를 바덧섯다.
『필경 신이 리군을 배반하는 모양인데...』
인제는 나까지 그의 태도를 의심하얏섯다. 그러나 그는 역시 남의 안해이라는 책임과 의무는 저바리지 안앗다.
『내가 리선생을 엇더케 잇습니까. 그리는 나의 첫사랑인 동시 은사이요. 또 리해잇는 남편입니다.』
울어가며 하소를 하는 것을 보왓다. 지금은 시장에서 다시 뛰어나와 연극사로 갓다. 일전에 경주에서 엽서가 왓다. 부산까지 가서는 남편되는 리경환군도 시장에서 탈퇴를 식혀 연극사로 꺼러갈 것이라고 나는 밋고 잇다.
『은봉이가 또 남편을 바리고 연극사로 갓답니다 그려.』
말하는 사람을 여러 번 보앗다. 그러나 나는
『첫사랑... 은사... 리해잇는 남편.』 이라는 소리가 귀에 남아잇서 혼자 우서바릴 뿐이엇다.
배우 남편에 배우 안해가 극단에서 다니는 이상- 더욱히 조선가티 혼란된 극게에서는 조금이라도 자존심 잇고 량심이 잇는 사람이면 도저히 한 곳에 오래부터 잇기는 어려울 일이다.
땍-군 한 두눈에 「잇트」가 번개가티 발산된다. 그는 분명히 입으로 인사를 하지 안코 눈으로 인사를 한다. 玉女라는 라운규 활동사진에 나타 낫슬때의 전옥은 그다지 취할 점이 업섯다. 뒤를 이어 그는 주삼손(朱三孫)군과 손목을 잡고 가진 고생을 만히 하얏스나 마츰내 하는 수 업시 영화게를 떠나 그는 연극사의 강홍식군의 품을 차자 극단에 슨지가 임의 수개성상...
강홍식군의 식견과 열정에 싸흰 지도에 힘입어 이제는 단연히 빗나는 일개의 헤성이 되야바렷다.
그와 나와는 오직 만나면 목례나 할 뿐이다. 내가 그의 무대인으로서의 장래를 긔대하기는 일즉이 단성사에서 공연하얏든 취성좌의 「절약결혼」이라는 중국 히가극의 서막에 나타나 「서사」를 할 때 이엇다. 그 목소리 그 맵시가 왜그리 조흔지 몰낫다. 강군은 아즉도 전옥에게 배역이 오면 밤을 새워가면서라도 연기를 가르킨다고 다른 녀배우들이 부러워하는 소리를 드럿다. 그만콤 그는 행복하다. 미듬잇다. (끗)<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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