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광철의 전망차

100년 전 인천의 세모

by 형과니 2023. 3. 17.

100년 전 인천의 세모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2-04 00:41:21


100년 전 인천의 세모


방송작가이던 이서구 선생이 쓴 세시기에 세모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멋지게 지낸 곳은 인천이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외국인들의 거주지가 마련되자 나라마다 영사관을 개설하고 인천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10여국이 상관을 여니 양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인종 전시회의 진경을 보는 듯했다.

그 대표적인 무대가 제물포 구락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1901년 6월25일 응봉산 기슭의 2층 양관 낙성이었다.

그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당구대가 들어오고 역시 처음으로 정구장이 마련되는 등 모두가 신기한 풍경이었다.

뒤이어 외국인 전용의 대불호텔이 개점되자 인천은 완전히 외국인의 도시 처럼 되었다.

양력을 일본인들이나 지키는 것으로 여겼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것이 서구 외국인의 것임을 차츰 알게 되었다.

연말이 되자 서양인들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12월25일부터 휴가에 들어가고 이어 새해를 맞았다.

우리 정부에서도 외국인에게 맞추어 인천감리서에서 신풍에 맞는 세모행사와 양력 과세를 하도록 했던 것이다.

오늘이 12월15일-2006년도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싯점에 이른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이면 정리해야 할 일들 그리고 맞는 새해의 계획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그런데 그보다는 으레 망년회를 한다며 너도나도 설레는 것이 그간의 풍습이었다.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요란을 떠느라 이러다가는 亡年회가 되겠다고 걱정을 하던 뒤끝이었다.

경기가 안좋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도 연말이 되자 여기저기의 송년모임에 나가느라 분주해진다.

자각의 현상인지 모임의 이름은 망년회가 아니라 송년회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술자리 위주의 모임에서 봉사활동이라든지 가족들과의 오붓한 만남 아니면 경제강의 공연관람 절주캠페인등 다양하고도 의미있는 모임으로 송년회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12월은 정겹고 포근한 달-기억에 남는 그러면서 서로를 보듬어 안는 따뜻한 연말이기를 기대한다.



#중구 #세모 #제물포구락부

'오광철의 전망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의 동쪽  (0) 2023.03.17
다랑이와 나무서리  (0) 2023.03.17
반쪽짜리 체험마을  (0) 2023.03.17
시장 관사  (0) 2023.03.17
아름다운 악명  (0) 202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