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일여자고등학교 / 인천의 자랑스러운 딸로 사회 진출..
仁川愛/인천이야기
2014-02-16 21:07:24
인일여자고등학교
인천의 자랑스러운 딸로 사회 진출… 인일의 언니로서 후배에 귀감
요즘처럼 각계각층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때도 없다. 아직까지 여성들이 편안하게 일하기에 제약이 많다고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뛰어난 여성을 모두 가릴 수는 없다.
이런 여성 리더들 중 인천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인일여고 동문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교육, 문화·예술계는 물론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재계까지 인일여고 동문들이 진출해 있다.
인일여고 동문들은 사회적 활동 외에도 지난 2011년 개교 50주년을 기점으로 모교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인천 여성교육의 산실로 인천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인일여고 총동창회를 찾아 인일여고의 역사와 자랑, 그리고 현재 총동창회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 인일여고의 역사
인일여고는 1951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6년제였던 중학교 과정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분리됨에 따라 태동이 시작됐다.
인일여고의 뿌리는 당시 인천을 대표하던 명문 여학교인 인천여중이다. 인천여중은 지역에서 남학교를 대표하던 인천중이 제물포고를 병설하는 것을 지켜보며 새로운 여학교의 설립 필요성을 느꼈다.
인일여고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인천 제일의 여학교’라는 자부심을 담아 1961년 4월, 3학급으로 개교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인일여고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동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민주시대를 선도할 민주인의 육성’, ‘민주적인 여성상의 확립’, ‘원만한 인간 육성’을 교육이념으로 삼았다.
인일여고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희망과 필요에 따른 선택을 우선으로 두고 진학반과 취업반을 둬 능력과 처지에 맞는 교육과목을 이수하도록 했다.
인일여고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제2대 교장이었던 이창갑 교장이 재임한 후 학교 기반을 닦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학생들은 각 대학에서 실시하는 각종 학력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며 전국에 인일의 이름을 알렸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정부의 교육방침이 자주·자립을 지향하는 국민정신과 도의심을 함양하고 산업·과학·기술교육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집중하는 것으로 변하자 인일여고 역시 ‘조국 근대화를 위한 인간교육’ 실현을 교육목표로 삼고 ‘슬기롭고 튼튼한 여성’, ‘명랑하고 예의 바른 여성’, ‘생각하며 일하는 여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인일여고는 선발교육제도에 따라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만 다닐 수 있는 학교로 정평이 나기 시작하면서 교사들은 물론 재학생들의 자부심이 커져 갔다.
이에 발맞춰 해마다 배출되는 우수한 졸업생 역시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결과 입시제도가 변경돼 고교평준화 제도가 실시된 이후에도 인천지역 내에서 인일여고에 대한 명성은 여전했다.
# 인일여고 동창회
인일여고 교정에서 풋풋했던 단발머리 소녀시절을 보낸 동문들은 1997년 11월 열린 제1회 총동창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전까지 인일여고 동문들은 기별 중심의 모임을 가져왔다.
현재 인일여고 총동창회는 기별 동문회, 전체 동창회, 학교와의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활동은 지난해 11월 회원 400여 명이 와인열차를 타고 충청북도 영동을 다녀오며 친목을 다지는 한편, 인일여고의 발전과 전통 계승을 위한 논의를 한 것이다. 이에 앞선 2010년에는 153명의 동문이 참가한 가운데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경주 수학여행을 떠나 학창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2011년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인일여고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혁관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변화된 인일여고의 교정과 교복, 과거 상장, 동문들의 활약을 볼 수 있다.
# 인일여고를 빛낸 동문들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명성을 떨친 인일여고 동문들은 각 사회에 진출해 모교를 드높이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제1회 졸업생으로 인일여고 교장과 인천시교육연수원장을 거친 허회숙 인천시의원은 인일여고의 가장 큰언니로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이화여대 수학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석사, 독일 퀸즈대학 박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최순자 인하대 생명과학공학부 교수는 2010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13인 중 1인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위촉장을 받기도 했다.
KBS 예능 프로그램 ‘비타민’의 ‘위대한 밥상’ 코너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한영실 숙명여대 교수는 건강 정보를 전달해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안명옥 CHA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윤영숙 전 양궁선수도 인일여고를 빛낸 동문 중 하나다.
# 모교 발전을 위한 동문들의 노력
인일여고 총동창회는 2011년 개교 50주년을 기점으로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모금하고 있다. 이전에도 장학금 모금은 간간이 있었으나 전체 동문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전개한 것은 2011년이 시작이다.
인일여고를 대표하는 장학금은 ‘황연자 장학금’이다. 인일여고 개교 때부터 1976년까지 16년간 인일여고 교사로 재직했던 고(故) 황연자 선생의 유언에 따라 시행되는 사업이다. 한때 이 장학금은 원금이 고갈돼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1~8회 동창회에서 장학금을 모금해 그 이자로 계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일여고에서 정년퇴임한 민혜식 선생 역시 장학금 1천만 원을 기증해 ‘민혜식 장학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인일여고의 가장 큰언니인 1회 졸업생 조현희·장덕녀 씨는 1994년 각각 1천만 원, 500만 원을 기탁해 후배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몇 년 전부터는 숙원이었던 멘토링 사업, ‘인일 그린 브리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인일 그린 브리지 프로그램은 선후배를 멘토·멘티로 엮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멘토·멘티로 엮인 선후배들은 잊지 못할 추억 쌓기와 함께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공유하며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한다. 도서대금도 일부 지급해 참고서를 각자 사서 볼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동문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선배들 중에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며 ‘이제부터 나는 너의 엄마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멀리 타국에서 멘토가 되고 싶다며 자원하는 손길이 뻗치고 있다.
선배의 도움을 받은 후배들 중에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하루빨리 후배들을 만나고 싶다며 학교와 총동창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자 인일여고 총동문회장 인터뷰
“2만5천여 동문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인일여고 총동창회가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자 인일여고 총동창회장은 동문 간의 친목 도모와 모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그리고 동문의 힘을 모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동창회의 가장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 2012년 제8대 회장으로 추대된 뒤 동문들의 화합과 힘을 결집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각종 장학사업과 함께 최근에 시작한 인일 그린 브리지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선후배 멘토링 사업인 이 프로그램은 선배가 후배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선배가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일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동문들 모두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그리고 보다 멋진 선배가 되기 위한 일종의 활력 같은 것을 찾았죠.”
사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회장에 따르면 머나먼 이국 땅에서도,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새내기 학생들도 서로 멘토로 활동하고 싶다며 총동창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회장은 총동창회의 저력이 학교를 시작으로 점차 사회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다고 한다.
그는 동문의 화합과 함께 사회를 향한 헌신과 기여에도 관심이 높다. 더욱이 요즘은 기업이나 단체들이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대세라 인일여고 총동창회 역시 인천시와 협력해 각자 개개인이 가진 재능을 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회장은 “인일여고만큼 뛰어난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도 드물 것”이라며 “모교가 있는 인천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02월 12일 최미경 기자 mkc@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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