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리랑이 있다고?
인천의문화/인천의 노래
2021-12-10 21:33:58
인천 아리랑이 있다고?
시에서 제작한 인천 아리랑의 영상을 들어보니 가사는 대부분의 아리랑답게 애절하고 억울한데 근자에 편곡하고 개사된 잔치마당의 인천아리랑은 흥이 절로 난다.
시에서 제작한 인천 아리랑의 영상과 조 우성님의 칼럼 '인천아리랑을 부르던 부두'에서의 가사는 같고, 2021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아리랑 플래시몹에서 부른 인천 아리랑은 상당히 경쾌하고 금세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흥을 가지고 있으나 가사는 다소 변화되어 불렀다.
인천 아리랑이 있는 것을 아는 분들보다 모르는 인천분들이 많을터이니 시산하 예술단체나 담당부서에서 주관하여
'인천 아리랑'을 원곡으로든 편곡을 하든 인천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며 즐겨 들을 수 있게 한다면 인천역사의 한 부분을 알차게 소개하며 알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http://michuhol.grandculture.net/michuhol/toc/GC04701739
‘인천 아리랑’을 부르던 부두
개항 이후 인천에는 동·서양인 물론 전국 팔도 사람들과 물화(物貨)들이 밀려들었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크게 늘었다. 전체 인구의 9할이 농사에 종사했지만 호구지책이 난망했던 시절, 인천에는 일자리가 하루가 멀게 생겼던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천 러쉬’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인천 인구 유입의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전국 팔도에서 너도 나도 새로운 땅 인천으로 이주해 왔으니 이 나라의 고질적 토착병 같았던 ‘지방색(地方色)’이 인천에서만은 있을 리 없었다. 그리하여 인천은 비류 이래 제 삶을 새로 살기 위해 전국 각처에서 이주해 온 ‘개척자’들의 땅이 되었고 그 같은 진취성과 지방색을 초월한 포용성이 인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크게 작용해 왔던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일자리가 무한정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당수의 이주자들은 항구 도시라는 특성상 바다에 연관해 삶을 꾸려가지 않으면 안 됐다. 들고나는 물화는 한정돼 있으나 목도꾼은 넘쳐나 생존 경쟁이 가속화됐던 것인데, 설상가상 일본인들의 조선인 착취도 날이 갈수록 간교하고 심화돼 갔다.
그 시절, 그 같은 애환을 반영한 민요에 ‘인천 아리랑’이 있다. 이 노래는 인천 출신의 국문학자인 허경진 교수(연세대)가 미 하버드 대 옌칭 도서관에서 찾아내 국내에 소개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천 제물포 모두 살기 좋아도/왜인(倭人) 위세에 난 못 살겠네 흥//에구 대구 흥/단 둘이만 사자나/에구 대구 흥 성하로다 흥//아리랑 아라랑 아라리오/아라랑 알션 아라리아//산도 싫고 물도 싫고/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아라랑 알션 아라리라//
그 무렵 부둣가의 정서를 소박하게 드러낸 ‘인천 아리랑’의 채록 연대가 1894년으로 돼 있는 것을 보면 선대들이 ‘칠통 마당’이라 불렀던 곳이 배경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인들의 위세에 눌려 ‘칠통마당’이라 했던 ‘부두’는 일반적으로 ‘선창(船艙)’이라 불렸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인천에서는 묘하게도 우리말 부두(埠頭)와 왜식 용어인 선창(船艙)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미군이 사용하던 군사용 부두는 줄곧 ‘찰리 부두’ 등으로 일컬었던 데 반해 지금의 인천역 뒤의 배다리와 어시장(魚市場) 일대는 누구나 ‘선창’이라 불렀던 것이다. [중략 - 전문 아래 링크] 글·조우성 (시인ㆍ인천시 시사편찬위원)
경인일보의 인천아리랑 [상,하] 기사링크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81011010003790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81018010006427
2021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 아리랑 플래시몹
'인천 아리랑'은 한국 최초로 채록된 아리랑입니다! 1894년 5월 일본에서 발간된 '유우빈호우치신문'의 '조선의 유행요'와 그해 8월 일본 유학자 홍석현에 의해 일본 도쿄 하쿠분간에서 간행된 조선어 회화책 '신찬조선회화'에 인천 아리랑이 실렸습니다. 19세기 근대 개항장이었던 인천에서 불려진 인천 아리랑은 선조들의 삶과 애환을 달래는 노래였습니다.
2021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 아리랑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의 일환으로 인천아리랑 댄스 버전 음원 제작 및 플래시몹을 진행했습니다~ 청년들의 에너지 뿜뿜한 댄스와 신나는 인천아리랑으로 우리의 애환을 달래봅시다~! 얼씨구우! 지화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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