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소감 / 엄흥섭(嚴興燮)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22-03-11 15:06:52
1930년대 인천풍경
인천소감 / 엄흥섭(嚴興燮)
나는 '인천' 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슬퍼한다. 그것은 '인천' 이 항구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또한 항구 가운데서도 해방된 낭만적 항구이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나는 인천에 대한 지식이 깊지는 못하나 그러나 외양만 훑고 이러쿵저러쿵 짓거리는 인상파보다는 좀더 심각하게 인천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인천을 첫 번 본 것은 1924년 첫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하인천에서 하차해 가지고 인천명소인 동시에 조선 명소인 월미도 조탕에 갔다.
나는 부산, 군산 등의 항구를 소년시대에 가본 일이 있거니와 인천처럼 낭만적인 항구는 아니었음을 잘 안다. 여로(旅路)의 피곤을 조탕에 씻어버리고 잠옷 (네마끼] 바람으로 호수가 밀려나간 해변가의 주먹섬 위에서 묵직한 바닷바람을 쏘일 때의 기분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새롭다. 나는 그 뒤 늘 인천을 동경했다. 인천바다를 그리워했다.
그러다가 나는 지금부터 오, 육년 전 봄에서 여름까지 사, 오 개월을 인천서 지냈다.
인천의 봄을 악평하자면 너무도 해방된 속물이 아닌 바는 아니나 그것이 또한 인천이 인천으로서 갖지 않을 수 없는 특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남국(南國)의 순정도시(純情都市) 진주(晉州)를 해방도시라 한 일이 있거니와 인천 역시 진주에 지지 않는 해방도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천이 노동하는 대중도시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선창가에 천여명의 노동자가 들끓는다.
항구마다 노동자가 많은 것은 항구의 특징이거니와 조선 제일을 자랑하는 부산부두의 노동자수와 별 손색이 없다. 그들의 보금자리인 화평리, 송림, 신화수리, 도산정 일대의 혹은 산비탈, 혹은 낭떠러지 혹은 거름자리에 실그러진 성냥갑처럼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다닥다닥 앙상히 붙어서 캄캄한 새벽과 저녁 어두운 뒤라야 가는 연기를 올리는 풍경은 동양 제일 축항시설을 자랑하는 인천으로서의 모순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근대도시로서 이러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도시가 오직 인천뿐만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적극적은 아니었으나 인천풍경을(물론 자연풍경만은 아니다) 창작 가운데 삽입(揷入)하려 했다. 혹 나의 졸작(拙作) 「새벽바다」, 「고민을 읽은 독자나 최근작 「열정기」를 읽는 분이 있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줄 안다.
오륙년 동안 인천은 퍽 변했다 한다. 지난봄에 하인천에 내려서 몇 시간동안 선유(船遊)를 하고 돌아온 뒤로는 아직 한 번도 인천을 못 가보았다.
가까운 곳이었지만 홱 가기가 힘이 든다.
그 동안 인천은 카페가 늘고 술집이 늘고 양복점이 늘고 사진관이 늘고 미두꾼이 늘었다 한다. 이런 것들이 늘어간다는 것은 부두의 수천 노동자의 생애가 날마다 쪼들려 간다는 반향(反)이 아닐 수 없다.
인천 ! 인천을 사랑하면서도 인천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미』 창간호(백미사 ; 인천), 19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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