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川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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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06:01:20
仁川 타워
(89. 3. 17) / 경인일보 첨성단
그것은 하나의 로망이고 한 편의 「詩」였다. 5色 전등으로 치장한 仁川號가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자港內에 정박한 모든 배가 일제히 경적을 울린다. 甲板을 밝히는 수많은 횃불. 이 횃불과 56 전등은 파도에 投影되어 黃金 빛으로 반짝인다. 거기에 마도로스 복장을 한 中年 紳士가 서 있다.
▼導船士 裵基泰씨. 그의 오른 손에선 88 올림픽 聖火가 활활 타고 있다. 聖火 奉送 仁川市의 최종 주자다. 하늘과 땅과바다가 동시에 맛보는 감동이었다. 잘은 몰라도 仁川港이 開港한 이래 가장 벅찬 숨결이었을 게다. 裵基泰씨는 이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고, 이때의 숨결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市長을 찾아가 仁川을 상징하는 造型物을 희사하겠다고 제안한다. 이래서 생긴게 「仁川타워 建立委다.
▼紀元前 2000년경에 세워졌다는 舊約聖書의 바벨塔」이래 지구상에는 무수한 탑이 세워졌다. 1078년 「윌리엄 1世」는 깨끗함을 염원하여 화이트 타워 (White Tower)를 런던 「템즈」江 北쪽에 세웠으나 한때는 國事犯 감옥으로쓰이다가 지금은 武器와 問機具를 진열한 「歷史의 記憶場」으로 변했다. 그래서 런던 塔은 陰慘한 傳說의 고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1889년에 세운 파리의 「에펠 塔」에 「런던 塔」과 같이 歷史의 이야기는없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世界의 地上 建築物 中 최고 높이(약 3백m)를 자랑했고 特殊한 材料, 特別한工法을 사용했다 해서 오늘에 회자되고 있다. 「에펠」이라는 이름은 萬國博覽會場이었던 이 곳에 鐵塔을세운 橋梁技術者「알렉산더 에펠」의 이름을 딴 것. 2차 세계대전 후엔 텔레비전 送信塔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1271년에 시작하여 1350년에 完成시킨 世界 7大 不可思議의 하나인 「피사의 斜塔」등도 觀光 이상의 이야기 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導船士 裵基泰씨가 기증할 「仁川 타워는 약 1백20m 높이의것으로 月尾島 南端에 세우기로 우선 定했다는 보도다(本報 17일자). 아무쪼록 後世에 두고 두고 회자될 記念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歷史와 벅찬 감동과 잊을 수 없는 숨결이 담겨진 「仁川 타워」가 되도록 衆智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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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지금 계획대로 지어진 타워가 명칭을 달리했는지 월미도 남단이나 인천항 주변의 어느 곳에도 공식적인 인천타워는 없습니다 지어졌다면 어느 것이 인천타워인지 혹시 계획이 무산되었는지는 확인이 되지를 않아 알 수 없습니다.
88올림픽 인천 성화봉송의 마지막 주자는 導船士 裵順泰(배순태) 씨이며 대한민국에서 국가고시로 합격한 최초의 도선사(9호, 1958년) 역시 導船士 裵順泰씨입니다.
칼럼의 당사자인 裵基泰(배기태)씨는 전국도선사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분으로 導船士 裵順泰(배순태)씨의 오기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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