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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여차리 갯벌

by 형과니 2023. 3. 28.

여차리 갯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2 10:17:38

 

여차리 갯벌

 

 

 강화군 화도면은 원래 또하나의 섬이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조선 숙종조이던 1706년 강화 유수 민진원이 간척사업을 하면서 본섬에 이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화도면에서 양도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옛 사기리 포구에서 길상면 선두리를 잇는 방죽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화도면은 가슴 복판에 영산 마리를 안은 형국이 되었다. 그러면서 마리산을 중심으로 면소재인 상방리로 부터 시작 시계방향으로 문산 덕포 사기 동막 흥왕 여차 장화 내리로 돌게 되며 오늘날 회주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중의 장화리는 강화도의 서남쪽 끝인 만큼 국방의 요지였다. 지금도 장곶보가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수군 만호를 두었던 곳이라고 하며 장곶의 곶이 꽃으로 바뀌어 오늘의 장화리가 되었다.

 

 그리고 장화리에 닿기 전의 지역이 여차(如此)리이다. 여차리의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98년에 간행된 인천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여()는 중세 국어의 가장자리의 뜻인 이요 차() 역시 갓의 중복 표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때 이궁이 있었던 흥왕리를 중심으로 그 옆마을이란 뜻으로 사용해온 지명이라는 것이다.

 

 그런 여차리에 아득한 옛날부터 인적이 있었던 것으로 규명되고 있다. 즉 연전의 모대학 연구팀에 의해 유사이전 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여차리의 경지 여러곳에서 신석기 전기의 토기편들이 수십점씩 발견되었는데 비록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었을 망정 다른 서해안 도서에서 발견된 무늬와는 다른 어골문이어서 유적이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오늘날 여차리가 주목받는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여차리 남단에서 전개되는 갯벌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인 습지생태계 서식지라는 점과 서해안의 일몰 관광지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동해안의 일출을 찾던 경향 각지의 관광객들이 여차리 장화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내달에 여차리에 개관한다는 강화갯벌센터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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