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적석사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7-03-14 11:23:07
일몰 명소 강화도 적석사
하루 해가 떨어질 무렵, 한 해의 여정을 차곡차곡 되짚어 보기 위해 산을 찾는다.
오르락 내리락, 굽이굽이 길을 돌아 찾아간 강화 고려산 앞마을은 늦은 오후 햇살에 휩싸여 있다.
지상 최고라는 적석사의 낙조를 보려면 서둘러 산에 올라야 겠다.
가파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 마을에서 사찰 까지 오르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쉽게 가 닿는다.
나무들이 운치있게 서있어 차로 후딱 지나가 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산행의 의미를 잘 살리려면,
이 다음엔 꼭 마을에 차를 세워둔 채 차근차근 길을 밟아보리라 다짐한다.
큼지막한 돌로 짜임새 있게 쌓은 축대가 사찰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적석사는 1600여년 전인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창건되었지만,
지난 1998년 찾아온 홍수로 입었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듬은 덕에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인도에서 온 스님(천축 조사)이 고려산 정상에 있는 오련지(五蓮池)에서
연못에 핀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 신통으로 하늘에 날렸는데
그 연꽃들은 제각기 다른 장소에 떨어졌다.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청련사, 백련사와 지금은 없어진 흑련사, 황련사와 더불어
적련사(赤蓮寺 : 현 적석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문을 연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전통 찻집 ‘염화의 미소’가 낙조대로 오르는 시발점이다.
‘낙조대, 해수관음전’이라 투박하게 쓴 이정표를 본 뒤 나무 뿌리와 돌로 다듬은 계단을 하나하나 밟는다.
5분 남짓한 짧은 거리이나 제법 경사가 급해 정상이 보일 무렵이면 숨소리는 이미 거칠대로 거칠어져 있다.
관음기도도량인 적석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의 옆모습이 보이면 그곳이 바로 낙조대이다.
절절한 소망을 담은 돌멩이로 정성들여 쌓은 돌탑들이 불상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가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곳 어디쯤에 하루 해가 걸려있다.
사각으로 만들어진 낙조대에서는 어느 지점에 발을 두더라도 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발 아래엔 산 그림자를 품에 안고 있는 저수지와 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다.
저녁 밥 짓는 푸른 연기는 보이지 않지만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을 밝히며 하루를 접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은회색 구름 속에 몸을 숨기었다 드러냈다를 반복하며 모양과 빛깔을
제 멋에 겨워 연출해대던 해는 힘겹게 올라온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인지,
아주 잠시 잠깐 동그란 제 얼굴을 보여주었다.
때맞춰 마을의 개들은 더욱 크게 ‘컹컹’ 짖어대고, 고려산으로부터 뻗어나온 크고 작은 산들도,
저수지의 물빛도, 밭이나 논들이며 지붕도 덩달아 홍조를 띤다.
뒤늦게 허겁지겁 낙조대에 도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의 뒷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와, 하, 아, 우∼와.’ 하지만 이내 쓸 수 있는 감탄사의 한계에 부닥치곤 말끝을 얼버무린다.
해의 빛깔을 그저 ‘붉다’고 시각에 기대어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파고 들어오는 해의 표정에서 사람들 저마다 읽고 싶은 것들을 찾는다.
2003년에 맛보았을 회한이나 슬픔은 지는 해의 얼굴에 묻어버리고,
2004년에 새롭게 지필 희망의 신호를 얻으려 애쓸테지.
‘적석사는 동해 정동진의 정서쪽에 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는
누군가의 코멘트에 일행은 소리나는 쪽으로 주위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강화를 대표하는 8개의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첫손에 꼽힌다는 적석사의 낙조를 카메라폰에,
디지털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해 하던 이들도
해가 교동도와 석모도 쪽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 허탈함에 낙조대 언저리를 서성대기만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화려한 시절은 짧고 강하게 왔다 가는 것. 하늘은 해에게도 공평했다.
그러나 해가 졌다고,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해가 돌아간 뒷자욱을 두고두고 음미하는 것이야 말로 적석사에서의 낙조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다.
해는 사라졌지만 저수지 물빛에, 들녘 잡초에, 교동도 앞 바다에 잔뜩 묻혀놓은 여운은 오래도록 머물다 간다.
시야에 잡히는 풍경이 실루엣으로 보이기 시작할 무렵. 어둠이 하늘과 산과 땅, 그리고 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동네에서 밝아오는 불빛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 이제 땅으로 내려갈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이다.
낙조대를 지키는 두 개의 은빛 가로등도 이미 불을 밝힌 지 오래. 하산 길,
이제 우리가 의지해야 할 이정표는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1년의 삶이란 것도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2004년을 밝힐 마음의 불씨를 해로 부터 얻어간다.
늘 그랬듯 내 마음에 지핀 등불이 우리 삶의 가장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 주곤 했으니까.
한걸음 더
산 정상엔 억새밭, 솔밭, 고인돌
적석사 대웅전 아래에는 1714년 숙종 40년에 세워진 사적비가 있다.
글씨는 백하 윤순 선생의 작품인데 조선시대에 있었던 절의 중건중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웅전 동편 돌 틈에서 나오는 물은 차고 달다고 하는데, 나라에 무슨 변란이 있거나
흉년이 들면 물이 마르거나 갑자기 흐려져 마실 수 없었다고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사찰에 거주하는 대중의 숫자에 따라 물의 양이 틀려지기도 한단다.
위암에 걸렸던 사람이 오랫동안 물을 마시고 병을 치료하기도 한 신비한 우물이다.
하지만 적석사와 낙조대만 왔다 간다면 사실 적석사의 반밖에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낙조대에서 10분만 더가면 1만여 평의 억새 밭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날이 맑으면 북한의 황해도 해주까지 볼 수 있고, 북녘땅을 가장 넓게 관망할 수 있다.
억새 밭을 지나 정상쪽으로 10분 여를 걸어가면 넓게 펼쳐진 솔밭이 있어 삼림욕장이 되기도 한다.
솔밭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30여 기의 고인돌군이 있다.
승용차로 적석사 가기 _ 강화읍→서문삼거리→내가면(왼쪽) →국화저수지→청련사 입구
→고려 고종 홍릉 입구→산을 넘어→내가면 연촌→적석사입구(서문삼거리 기점 6.0km)
→적석사 표지판을 따라 적석사로 간다.
적석사 오르는 길은 포장되어 있지만 급경사라 운전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입구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버스로 적석사 가기 _ 강화읍버스터미널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강화읍→내가면 연촌
→적석사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서 20분 정도(1.9km) 가면 적석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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