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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

by 형과니 2023. 4. 2.

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2 01:11:00

 

내고장 우리산 길찾기-생태문화재

탐사 종주 1구간 종주기

 

비류고개가정동(14.4)

 

'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 종주단이 만월산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만월산은 땅이 붉어 '주안산'이라고도 하며 약사사라는 절이 있어 '약산'이라고도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산줄기는 속리산 서쪽으로 가지를 쳐 수원의 광교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김포평야를 남북으로 가르며 강화를 마주보는 문수산까지 그 미약한 산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들의 산에 대한 숭배문화나 산이 갖는 상징성을 이야기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산줄기는 각종 난개발에 밀려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왔다.

 

특히 한남정맥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인천·김포지역은 마루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미약한 능선으로 이어져 일반인과 산사람들에게까지 철저하게 외면당해 왔다.

 

그 사라진 내 고장의 산줄기를 바로 찾고 우리 산과 자연의 소중함을 시민들과 함께 느껴보자는 것이 우리가 한남정맥에서 강화 마니산까지 쉼없이 걸어가야할 분명한 이유다.

 

417일 오전 8. 인천대공원 정문 옆 쉼터에서 모인 10명의 종주단과 7명의 일반참가자들은 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용봉산의 경사면을 들머리로 첫발을 내딛었다.

 

첫 구간은 비류고개를 거쳐 철마산(금마산), 만월산, 호봉산, 장고개, 원적산, 철마정을 거쳐 가정동 경인고속도로 서인천나들목 부근 한신빌리지 앞까지, 지도상으로 14.4거리다.

 

철마산 2.5라는 이정표가 세워진 도로옆 고갯마루(오전 820)를 올라서면 군부대앞 군사도로(오전 836)와 만난다.

 

언덕을 타고 내려서면 다시 성현이라고도 불리는 비류고개(오전 846). 백제시대부터 이어진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진 이곳은 안내판 하나 없는 볼품없는 황톳길이다.

 

낮은 경사면을 따라 올라서면 그제서야 오늘 걸어야 할 산허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에는 철마산이라고 표기된 금마산(오전 915)은 비단결 같은 말잔등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마루금을 잡아 걷다보면 만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멈춰선 곳 아래로 부평농장(오전 930)이다. 그 넘어로는 부평과 만수동을 연결하는 만월산 터널공사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만월산(오전 1055) 정상에 위치한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걸음을 재촉하다보면 내리막을 따라 인천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부평삼거리. 여기서 신동아아파트 언덕을 넘어 백운공원을 지나 능선을 올라서면 부평도서관 뒷산인 호봉산(오전 1130)이다.

 

호봉산 동쪽으로는 현대아파트 단지와 미군부대, 그리고 부평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을 내려서면 십정동에서 화랑농장으로 이어지는 옛길로 6·25전쟁 이후 생선장수와 소금장수들이 많이 넘었다는 구르지고개(12).

 

다시 가좌동에서 부평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장고개(오후 1215)를 지나 종주단은 잠시 점심식사를 위해 배낭을 벗는다.

 

잠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지도상의 지명 조차도 잘못 표기되거나 명확치 않은 곳이 많아 산봉우리마다 올바른 지명을 찾아주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철마산을 남북으로 나눈 명신여고앞 도로 넘어 산 정상엔 주민들이 원적산(오후 142)이라고 쓰여진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주민들의 우리산 사랑을 잠시 뒤로 미룬채 철마정(오후 2)에 오르니 오늘 산행의 종착점인 경인고속도로 서인천나들목이 눈에 들어온다.

 

6시간 15분간의 종주 끝에 가정동 한신빌리지(오후 225)에 모인 종주단은 내달 1일 제2구간 집결지를 정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우리산줄기 분류법으로도 그렇듯이 비류고개에서 가정동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결국 내륙의 부평문화권과 해양의 인천문화권을 나누는 분기점이고 사람들은 두 문화권을 오가기 위해 5곳이 넘는 절개지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수없이 만나게 될 절개지와 산줄기들을 옛 기록으로나마 복원하고 정확한 이름을 달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조심스럽다.

 

/·사진=이원구·김주희기자 blog.itimes.co.kr/jjlwk

 

 

구간따라잡기

 

인천엔 철마산이 3

 

인천에는 철마산(鐵馬山)’3개나 된다. 1구간의 남동구 만수동, 부평구 산곡동 2곳과 제2구간중 서구 심곡동에 있는 산이다.

 

그러나 옛날 지도에서 철마산이란 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유래를 알 수 없는 지명이 입에 오르내리고, 일제때부터 제작된 대부분의 인천지역 지도에서 철마산이란 지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까.

 

인천시립박물관 배성수 학예연구사는 잘못 부르고 적거나, 공무원들이나 지도 제작자들이 지명의 유래를 잘못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철마산 세곳 중 세일고교 뒷편 원적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산이 있다.

 

원적산(元積山)’은 조선 중종 25(1530) ‘신증동국여지승람부평부에서 서쪽으로 15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영조 때(1750년대) ‘여지도서1842년 부평부읍지에서도 발견된다.

 

1969년 서구 심곡동과 부평구 산곡동을 잇는 도로 공사 때 철마산 관통도로 건설공사라 불렀다. 이 후 원적산은 잊혀진 듯하다.

 

또하나의 철마산인 서구 심곡동 철마산천마산(天馬山)’의 오기라는 주장이 있다.

 

이 산 밑 가정동에 아기장사가 태어나자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부모가 아이를 죽였고, 이 때 이 산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면서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 용마가 발자욱을 남긴 큰 바위를 마제석(馬蹄石)’라 했고, 이 산을 마제봉또는 천마가 나왔다해서 천마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11년 지도에는 철마산이라 표기됐는데, ‘천마산의 오기라는 것이다. 서구가 19976월 원적산 줄기 179m 봉우리에 세운 철마정이란 정자는 심곡동 철마산(천마산)에 있어야 할 것을 잘못 세웠다는 지적이다.

 

역시 남동구 만수동 철마산금마산(錦馬山)’의 오기라는 주장이 있지만,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몇몇 고지도에서 철마산이 있는 성현(星峴) 옆에 원통산(元通山)’이라 표기된 경우가 있으나철마산인지 알 수는 없다.

 

종주팀의 최원길 교사는 인천에 있는 세개의 철마산 중

 

만수동은 금마산 산곡동은 원적산 심곡동은 천마산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

 

인천일보는 한국토지공사 인천지역본부와 공동으로 우리 산줄기를 바로 알고 산이 주는 고마움을 시민과 함께 체험하기 위한 내고장 우리산 길찾기 생태·문화재 탐사종주-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기획취재를 시작한다.

 

17일 오전 8시 인천대공원에서 10명으로 구성된 종주단 발대식을 열고 매월 3회씩 끊어타기 형식으로 4개월간의 종주일정에 돌입한다.

 

우리 고유의 산줄기 분류법인 산경표에 의한 구분으로 하나의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정맥으로 나누어진 남북한의 산줄기 중에 한남정맥은 경기도와 인천을 지나는 백두대간과 연결된 유일한 정맥이다.

 

이 구간 중 인천지역에 해당하는 인천대공원앞 비류고개에서 만월산, 철마산, 계양산, 가현산, 문수산까지 70의 한남정맥 구간과 역사문화의 보고로 알려진 강화군의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 등 모두 120에 이르는 산악지형을 9개 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한다.

 

이번 종주취재는 난개발에 밀려 산줄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사라지거나 볼품없는 언덕으로 변해버린 한남정맥을 통해 우리 산줄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올바른 토지활용의 대안을 찾아나서는 뜻깊은 기획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섬 전체가 역사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풍부한 문화유적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동안 외지처럼 느껴졌던 강화군의 산줄기와 문화재, 환경 등을 상세히 체험하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들을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자리도 마련된다.

 

종주단은 문화재, 지리학 등 전문연구팀과 사전답사 및 안전산행을 담당할 안전·답사팀, 기록팀, 취재팀 등으로 구성했으며 인천지역의 산행인들도 함께 한다.

 

문수산(5구간)과 마니산(9구간) 구간에는 종주단과 일반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부대행사도 마련할 계획이다.

인천일보는 17일 발대식 기사를 시작으로 상세한 종주기와 관련기사들을 10회에 걸쳐 게재한다.

 

?ㅁ린? 종주일정(사정에 따라 일정 변경가능)

1구간(417)=비류고개만월산가정동(14.4)

2구간(51)=가정동계양산백석초교(14.3)

3구간(58)=백석초교가현산스무네미고개(11.5)

4구간(515)=스무네미고개대곶중학것고개(14.9)

5구간(529)=것고개문수산성동리(13.1)

6구간(65)=송악골고려산국화리(8.8)

7구간(612)=국화리혈구산인산리(6.3)

8구간(626)=인산리진강산조산리(7.7)

9구간(710)=화도초교마니산동막리(8.5) 

 

연구팀=배성수·이희인(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최원길·이기석(인천지리교사답사회 터사랑)

기록팀=최임식·신승운(한국토지공사 인천지역본부)

안전·답사팀=김영진·윤비희(안내산행전문가). 취재팀=이원구·김주희(인천일보기자)

 

 

인천지역에 산재한 산을 등행하고 정상에서 보면 얼마나 난개발로 훼손된지 아실겁니다. 온갖 쓰레기가 난무한 인천에서 사는 시민들이 불쌍합니다.인천사랑은 끊어진 줄기를 잇는 다리건설에서 260만 인천인구가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타지역에 쓸데없는 돈을 뿌리지 않게 될것입니다.안시장도 같이 등행하여 직접체험하면 예산책정이 될런지 ....

 

12.정용인: 한남정맥종주 얼마나 다녀갔나?

 

전수배·진희자(마산)’, ‘건건산악회(부산)’, ‘강산에(대전)’, ‘성산물소리(안양)’, ‘마구리산악회(부천)’ ‘홀대모 (홀로가는 대간꾼들의 모임)’, ‘나그네’, ‘마루금사람들.

 

지난달 17일 인천대공원을 출발한 종주단이 문수산 입구까지 걸어오면서 나무끝에 매달린 비표에 쓰여진 문구들이다.그렇다면 그동안 한남정맥을 종주한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 걸까.

 

국내 정맥종주의 역사는 80년대 말 한참 붐이 일었던 백두대간 종주와 연장선상에 있다.모험정신 혹은 일제에 의해 왜곡됐던 우리의 산줄기를 직접 걸어본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반성 등으로 승화되어 나갔고 그것이 정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그러나 백두대간이 부분적으로 등반능력 향상이나 훈련등반의 효과를 겸할 수 있었던 대상이었다면 정맥은 이보다 인문지리의 탐구나 환경문제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한남정맥 종주가 종주기라는 이름으로 남겨지기는 강남 요산산악회 회장으로 있는 안경호씨가 95년 쓴 종주기가 처음.

 

그 후 2001년까지만 해도 박태성·민경승씨팀 등 종주자가 3040명 정도였으나 그나마 종주기로 남기는 인천일보가 기획취재한 종주기를 포함해 두세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남한의 9개정맥을 모두 종주하는 마니아층이 확산되고 산악회 단위의 종주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200여명이 한남정맥을 종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정맥은 백두대간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진행방향을 김포 문수산에서 안성 칠현산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

 

더 가슴아픈 일은 대부분의 종주자들이 인천·경기지역이 아닌 서울과 지방등 타지역 산악인들이었다는 점이다.산줄기가 미약해 마루금을 정확히 타기가 어렵고 낮은 야산과 군사지역 등 장애 요인이 많다고는 하지만 결국 내고장의 산줄기를 우리 스스로가 외면하고 지내온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맥종주가 지리문화를 체험하는 교육적인 측면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이원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