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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인천도호부청사 

by 형과니 2023. 4. 15.

인천도호부청사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7-08-20 11:09:52

 

살아숨쉬는 인천여행 시리즈 < 38 > 인천도호부청사  

 

동헌 앞마당 쏟아지는 비를 보며 목민관은 농사 시름에 잠겼으리   

 

 

인천도호부청사 동헌. 부사가 업무를 집행하던 곳이다.

 

승악산 숲 속에선 찌르르 매미가 우는 데, 기와 건물 앞마당엔 고추잠자리가 날아 다닌다. 입추가 지난 지 일주일이 다 되었건만, 매미는 이제서야 울기를 시작했다. 지난 여름 내내 '장마 보다 더 장마 같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도 비는 인천도호부청사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와 날아오르는 잠자리, 늦여름의 매미소리'비구상' 그림처럼 부조화의 이미지로 채색되어진 인천도호부청사에 들어섰다.

 

관아 정문인 '아문'은 세 개의 출입구가 열려 있다. 한 가운데는 수령 만 출입할 수 있고 평민들은 양쪽 문을 이용해야 했다. '동립서출'에 따라 오른 쪽 문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문 건물이 좀 높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2층이다. 2층은 관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피기 위한 망루 같은 곳이다.

 

역시 3문으로 이뤄진 '중문'을 지나자 '동헌'이 드러난다. 수령이 머물며 집무를 보던 '본채'. 수령의 임무는 농사가 잘 되게 하고 인구를 늘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교육, 군사사무, 부역, 민사소송 등은 그 다음이었다.

 

동헌 앞마당에 '십자형 곤장틀'이 보인다. 곤장 모양이 마치 나룻배를 저어가는 ''처럼 생겼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곤장으로 엉덩이를 수십 대 맞는다면 엉덩이뼈가 다 부서지기 십상일텐데이 때 "저 것은 그냥 보라고 해 놓은 것이고 실제 곤장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회초리보다 약간 두꺼운 것이었다"고 김정희(45) 해설사가 귀뜸한다.

 

어쨌거나, 죄인을 치도곤하는 곤장에 거부감이 일지 않고 정겹기만 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곤장이 '나무'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나무 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훨훨 타올라 하얀 재로 남을 때까지 사람에게 ''을 베푼다.

 

곤장틀 옆에 굵은 몽당연필처럼 생긴 돌탑이 서 있다. 조선시대부터 갑오경장까지 인천도호부사를 지낸 수령 355인의 이름이 새겨진 '충의탑'이다.

 

탑 오른쪽, 즉 동헌을 정면으로 볼 때 오른 쪽으로 '사주문'이 나 있다. 수령의 가족이 머무는 '내아'로 통하는 문이다. 내아가 있어야 할 자리엔 풀나무가 수북하다. 지금의 도호부청사는 '화도진도'를 참조해 복원한 것이므로 옛날 원형으로 지었다고 볼 수는 없다.

 

왼 쪽 '내협문'을 지나자 '객사'가 드러난다. 동헌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한 객사는 임금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다. 임금이나 왕비의 생신을 비롯한 대궐행사 때면 수령은 이 곳에서 예를 올렸다. 객사 양 옆으로 난 두 칸의 방과 마루는 '익랑채'. 암행어사나 관찰사가 도호부청사에 왔을 때 기거하던 방이다.

 

객사를 등지고 서서 앞쪽을 바라본다. 장대비가 원반 같은 문학경기장과 신록이 잔뜩 부풀어오른 문학산을 적시고 있다. 수백 년전, 인천의 목민관은 이 자리에 서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 인천이란 곳이 어찌 이리 좋을고. <관련기사 20>

/·사진=김진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