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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인하대 송도캠퍼스

by 형과니 2023. 4. 16.

인하대 송도캠퍼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9-19 11:52:49

 

인하대 송도캠퍼스 

미추홀

 

하와이 이민들은 군대 막사와 다름없는 농막(農幕)에 기거하면서 고단한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분연히 독립 운동에 투신하여 군사 훈련에 임했는가 하면, 독립 공채를 발행해 하와이와 상해 임시 정부를 지원했다는 것은 특기할 일이다. 광복 후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민의 출발지요, 고향인 인천에 '대학'(大學)을 세우는 것이었다. 나라의 힘이 약해 국권을 상실했으며 그를 배양하는 길은 오직 교육(敎育)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건학 자금 수십만 달러을 보내왔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의 발의와 시민의 성원에 힘입어 인하공과대학은 1954년 개교하였다. 하지만 인천 유일의 4년제 대학이었던 인하대는 그간 지역 사회의 씽크탱크 역할은 고사하고 오히려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일의 경과야 어떻든 '송도국제도시' 안에 할애된 인하대 캠퍼스 부지가 서울 소재 모 대학보다 턱없이 적었다는 자체도 지역과 대학 간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미흡했던 데 기인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재단의 미흡한 지역 기여도도 요인이었다. 그러나 11일 안상수 시장과 홍승용 총장이 만나 66만평방미터 규모의 캠퍼스 조성에 최종 합의했다는 인천일보의 보도를 본 뜻있는 시민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환영했으리라 믿는다. 오랜 만에 듣는 대학의 쾌사였다.

 

이번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하대 제2캠퍼스추진위원회의가 주역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는 앞으로도 이번 일을 거울삼아 시민의 정서를 헤아려야 하며 인하대는 자신의 지역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거듭 나기를 바란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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