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나무 심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11-25 14:09:10
고향나무 심기
일찌기 문일평 선생은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흔했던 과일은 배·밤·복숭아·살구라고 했다. 귤이 얻어먹기 어려운 선과임에 비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상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평양의 밤, 풍기의 감, 그리고 보은의 대추는 대표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골 치고 밤나무·감나무·대추나무 없는 곳이 없었다. 여기에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에서 처럼 봄이면 복숭아·살구꽃이 만발하지 않는 마을이 없었다. 그리고 시골 고향집 뒷마당엔 으례 감나무 몇그루에 대추나무가, 마을 뒷산에는 밤나무숲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밤나무골이요, 대추나무골이요, 배꽃동네였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들이 어린것을 감질나게 했지만 손을 대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추석 제사상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바람에 떨어진 대추알이나 제풀에 물러 떨어진 병든 감을 주워 먹어야 했다. 그러느라 어린것들은 새벽이면 눈비비며 대추나무·감나무 밑을 더듬었다.
“대추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고 이어령 교수가 말했듯 대추나무며 감나무는 고향의 나무이다. 이들 나무를 보면 어렸을 적 고향을 떠올린다. 몸은 비록 도시화한 아파트 살림을 할망정, 밤을 까면서 장대들고 알밤 줍던 생각을 하고 감을 먹으면서는 고향집 뒤란의 감나무를 떠올린다.
인천시 관내에도 더러 과일 이름을 가진 지명이 있다. 밤나무골이었다는 율목동이요, 옛날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던 도원동과 계양구에는 이화동-즉 배꽃마을이 있다. 그러나 배꽃마을은 예전에 배가 닿았던 ‘배곶’이 변한 것이지 배꽃과는 관련이 없다. 계양구 박촌동에는 대추나무가 있었다는 대조(大棗)산이 있다. 연수구의 유실수 심기의 첫해인 올해 감나무 심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삭막한 도심을 고향의 정취가 넘치게 하기 위해 지난 봄부터 시작한 유실수 심기는 감나무를 비롯 앞으로 매화나무·사과나무를 심게 된다고 한다. 연수구의 고향나무 심기가 이웃에도 파급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유행가 가사 처럼 “연수구에는 감나무를, 남구에는 배나무를”하는 노래가 퍼져나갔으면 한다.
일찌기 문일평 선생은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흔했던 과일은 배·밤·복숭아·살구라고 했다. 귤이 얻어먹기 어려운 선과임에 비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상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평양의 밤, 풍기의 감, 그리고 보은의 대추는 대표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골 치고 밤나무·감나무·대추나무 없는 곳이 없었다. 여기에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에서 처럼 봄이면 복숭아·살구꽃이 만발하지 않는 마을이 없었다. 그리고 시골 고향집 뒷마당엔 으례 감나무 몇그루에 대추나무가, 마을 뒷산에는 밤나무숲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밤나무골이요, 대추나무골이요, 배꽃동네였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들이 어린것을 감질나게 했지만 손을 대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추석 제사상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바람에 떨어진 대추알이나 제풀에 물러 떨어진 병든 감을 주워 먹어야 했다. 그러느라 어린것들은 새벽이면 눈비비며 대추나무·감나무 밑을 더듬었다.
“대추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고 이어령 교수가 말했듯 대추나무며 감나무는 고향의 나무이다. 이들 나무를 보면 어렸을 적 고향을 떠올린다. 몸은 비록 도시화한 아파트 살림을 할망정, 밤을 까면서 장대들고 알밤 줍던 생각을 하고 감을 먹으면서는 고향집 뒤란의 감나무를 떠올린다.
인천시 관내에도 더러 과일 이름을 가진 지명이 있다. 밤나무골이었다는 율목동이요, 옛날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던 도원동과 계양구에는 이화동-즉 배꽃마을이 있다. 그러나 배꽃마을은 예전에 배가 닿았던 ‘배곶’이 변한 것이지 배꽃과는 관련이 없다. 계양구 박촌동에는 대추나무가 있었다는 대조(大棗)산이 있다. 연수구의 유실수 심기의 첫해인 올해 감나무 심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삭막한 도심을 고향의 정취가 넘치게 하기 위해 지난 봄부터 시작한 유실수 심기는 감나무를 비롯 앞으로 매화나무·사과나무를 심게 된다고 한다. 연수구의 고향나무 심기가 이웃에도 파급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유행가 가사 처럼 “연수구에는 감나무를, 남구에는 배나무를”하는 노래가 퍼져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