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해성보육원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12-08 13:23:07
반가운 해성보육원
<제물포에 본당이 생기자 본당 신부는 신자들의 영신적 면을 돌보는 한편 가난과 무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료소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 서울 수녀원에 청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수녀들을 파견해 주기를 원했다. 이 일은 바로 허락되어 1894년 8월18일에 우리 수녀들은 거창한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에 발을 내려 놓았다. 본원을 떠난 슬픔을 달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병자와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1987년 발간된 바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사 제1집에 나오는 해성보육원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수녀들에 의해 인천에서 처음으로-아마 전국적으로도 처음 일이었으리라-보육원이 시작되었다. 그해 가을 4살과 12살 된 여자 아이가 들어왔으며, 이듬해인 1895년 봄 두살 된 남자 아이가 입소했다고 한다.
아직 고아를 수용할 집이 없어 수녀원 내 방 하나를 비워 이들을 보살피면서 계속 고아들을 들어오게 했다. 비로소 1896년 8월15일 120평에 달하는 원사를 신축하여 천주교 인천 본당 소속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1900년대 인천 본당 신부로 부임한 프랑스인 으제니오 신부가 원사 확장과 수녀원 신축 등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으며, 사재로 용현동과 영종도 등지에 토지를 매입 확고한 기반을 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인하대학 후문인 용현동에 이전하기까지 해성보육원은 답동 성당 구내에 있었다. 싸리재 애관극장 건너편으로 들어가서였다. 자매시설이라 할 1935년 창설된 해성병원도 그곳에 있었다. 신포동에서 긴담 모퉁이에 이르는 길은 지금 한적한 골목이지만 그곳에서 언제나 낯선 차림의 수녀들로 어린 것들의 눈길을 끌었다. 삼복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검정색 복장이었다. 개중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는 할머니 수녀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해성보육원 기사를 읽는다. 인하대학교 교직원들이 해성보육원에 후원금을 기탁하는 사진 보도이다. 한세기가 넘게 가난과 무지에다, 나라도 돌보지 못하던 고아를 보살펴 온 해성보육원-이름만으로도 반갑다.
<제물포에 본당이 생기자 본당 신부는 신자들의 영신적 면을 돌보는 한편 가난과 무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료소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 서울 수녀원에 청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수녀들을 파견해 주기를 원했다. 이 일은 바로 허락되어 1894년 8월18일에 우리 수녀들은 거창한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에 발을 내려 놓았다. 본원을 떠난 슬픔을 달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병자와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1987년 발간된 바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사 제1집에 나오는 해성보육원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수녀들에 의해 인천에서 처음으로-아마 전국적으로도 처음 일이었으리라-보육원이 시작되었다. 그해 가을 4살과 12살 된 여자 아이가 들어왔으며, 이듬해인 1895년 봄 두살 된 남자 아이가 입소했다고 한다.
아직 고아를 수용할 집이 없어 수녀원 내 방 하나를 비워 이들을 보살피면서 계속 고아들을 들어오게 했다. 비로소 1896년 8월15일 120평에 달하는 원사를 신축하여 천주교 인천 본당 소속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1900년대 인천 본당 신부로 부임한 프랑스인 으제니오 신부가 원사 확장과 수녀원 신축 등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으며, 사재로 용현동과 영종도 등지에 토지를 매입 확고한 기반을 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인하대학 후문인 용현동에 이전하기까지 해성보육원은 답동 성당 구내에 있었다. 싸리재 애관극장 건너편으로 들어가서였다. 자매시설이라 할 1935년 창설된 해성병원도 그곳에 있었다. 신포동에서 긴담 모퉁이에 이르는 길은 지금 한적한 골목이지만 그곳에서 언제나 낯선 차림의 수녀들로 어린 것들의 눈길을 끌었다. 삼복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검정색 복장이었다. 개중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는 할머니 수녀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해성보육원 기사를 읽는다. 인하대학교 교직원들이 해성보육원에 후원금을 기탁하는 사진 보도이다. 한세기가 넘게 가난과 무지에다, 나라도 돌보지 못하던 고아를 보살펴 온 해성보육원-이름만으로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