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에 투영된 인천-낭만적 항구
인천의문화/인천의 노래
2022-04-09 01:22:29
연안부두
대중가요에 투영된 인천-낭만적 항구
인천이나 인천과 관련있는 지명이 대중가요의 가사로 등장하는 경우는 대략적으로 조사해 보아도 10곡이 훨씬 넘는다.그러나 정확한 통계가 나와있는 것은 아니며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도 않으므로 이 역시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또한 그 가요가 발표된 연도 역시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조사된 것을 토대로 대략 그 제목을 제시하면
‘바다의 나그네’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오기택노래),
‘항구의 부기우기’ (최치수 작사,김용만작곡, 백야성노래),
‘마도로스 도돔바 ’ (최치수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노래),
‘항구야 잘있거라’ (남려성 작사,손목인 작곡, 김영춘 노래),
‘밀월의 월미도’ (고복수노래),
‘마도로스 수기’ (남백송 노래),
‘마도로스 사랑’ (강사랑 작사, 이재호 작곡, 남인수 노래),
‘제물포 아가씨’ (박재홍 노래),
‘전화통신’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남백송·심연옥 노래),
‘갈매기 사랑’ (설운도 노래)
‘월미도를 아시나요’ (반야월 작사, 김점도 작곡, 주현미노래)등이 있다.
여기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별의 인천항’ (1954년, 세고천 작사, 전오승 작곡, 박경원 노래),
‘비내린 인천항 부두’ (1967년, 이인선 작사, 나음파 작곡, 배호 노래),
‘연안부두’ (1979년, 조은파작사, 안치행 작곡, 김트리오 노래)도 있다.
최근에 발표된 노래는 그 수가 매우 미미하고 주로 랩 가사에서 간략히 지명이 등장하는 노래가 두 세 곡 있울 뿐이 이 노래들 가운데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거나 인천과 관련된 지명이 잠깐 등장하는 노래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별의 인천항’이나 ‘연안부두’, ‘비내린 인천항’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이별의 인천항’과 ‘연안부두’는 각각 월미도와 연안부두에 노래비가 서 있을 정도로 인천시민들에게 인천을 노래한 대표적인 대중가요로 인식되고 있는 노래이다.
가사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지적할 것은 노래 이름만 보더라도 인천이 대중가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있는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노래제목을 일별해 보면 그것이 모두 바다와 관련되어 있음을 금방 확인 할 수 있다. 인천이 대중가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략 가사를 훑어보면 주로 등장하는 도시 공간이 인천항, 항구, 마도로스, 부두, 월미도, 연안부두 등으로 절대적으로 바다와 항구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1958년 발표된 ‘전화통신’은 제목으로만 보면 바다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 조금씩 대중화되기 시작한 전화를 소재로 청춘남녀가 대화하는 형식의 가사인데 데이트 할 장소로 인천 월미도가 등장하고 있다. 이 역시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대중가요의 특성상 항구나 부두는 단골로 등장하는 가사의 소재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항구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인천은 곧 인천항이라는 등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항구는 대부분 만남보다는 이별의 공간이다.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보내는 곳, 혹은 선원들의 하루살이 사랑이 있는 곳이 항구이다. 여기에 갈매기, 등대, 뱃고동이 그런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이별의 인천항’은 그런 정취를 잘 살려내었다.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 갈매기도 슬피우는 이별의 인천항구
항구마다 울고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 정들자 이별의 고동소리 목메어 운다
등대마다 님을두고 내일은 어느항구 / 쓴웃음친 남아에도 순정은 있다
항구마다 울고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 작약도의 등대불만 가물거린다
외항선원수첩에는 이별도 많은데 / 오늘밤은 그라스에 맺은 인연을
항구마다 울고가는 하루살이 사랑인가 / 물새들도 눈물짖는 이별의 인천항구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런 노래들이 주로 1970년대 이전에 풍성하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1979년에 발표된 ‘연안부두’와 1967년에 발표된‘비내린 인천항부두’를 제외하면 주로 1950년대 이전에 발표된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뭔가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위에 제시한 노래들의 발표연대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1950년대 이전의 노래들로 보인다. 왜냐하면 노래를 부른 가수, 작곡자, 작사가들이 주로 그 당시에 대중 가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항구야 잘있거라’는 1943년 발표된 노래이며, ‘제물포 아가씨’는 1949년 이전에 발표된 노래이다.
대표적인 인천노래 ‘이별의 인천항’도 1954년에 발표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흐름 속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통칭 트로트라고 불리는 노래들은 통속적 낭만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그 배경으로 항구와 부두는 단골로 등장하는 노래의 공간이 되었다.
게다가 인천항을 다룬 노래라고 하더라도 인천의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별의 인천항‘이나 ’연안부두‘ 모두 구체적 지명으로 인천항, 작약도, 연안부두가 등장하는 것을 빼버리고 나면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항구라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포항이나 군산항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항구를 소재로 해서 대중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보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 목메어 불러바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형제여
가고파 목이메어 부르던 이거리는 /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없는 저물결들도 / 부딪혀 슬퍼하며 가는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형제여
이 노래 역시 부산항으로서의 특별한 정취는 ‘꽃피는 동백섬’ 과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정도이다. 항구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는 부산항이나 인천항이나 다르지 않다. 갈매기와 파도, 떠나가는 배와 등대, 그리고 이별이 대부분의 항구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의 일반적 정서이다.
요컨대 대중가요에 나타난 가사로서 인천 항구는 만남과 헤어짐이 일어나는 공간,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님과의 애달픈 사랑의 공간으로서 보편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연안부두’는 그런 대중가요 가사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항구의 정취를 잘 드러낸 것에 꼽힌다. 1절은 배의 들고남을, 2절은 서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광경을 정감있게 나타내준다.
어쩌다 한번 오는 저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하나
부두에 꿈을 싣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은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속에 가물가물 정든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선 이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사연을 갖고 오는 배로, 그래서 그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이나 이제 도착하는 사람이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배로 그리고 있으며, 떠나가는 배는 꿈을 두고 떠나는 이별의 배로 그리고 있다. 2절에서는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 혹은 가족들의 이별의 정한을 그린다. 애달픈 헤어짐이기에 파도도 우는 것처럼 보이고 멀어져 가는 베에서 안타깝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안개와 함께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다. 해는지고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항구가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런 운명을 스스로도 거부하고 싶어서 말해달라고 외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렇게 ‘연안부두’는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헤어짐의 정경을 잘 그려내어 당시에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 이후 인천항이 앞에서 말한 두 곡을 제외하고는 거의 노래가사에서 사라진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부산항이 1970년대 이후에도 ‘부산갈매기’(심중순 작사·작곡, 문성재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 작사·작곡, 조용필 노래)등 대표적인 노래를 통해 대중적 이미지를 높여간 점과 구별된다. 이것은 아마 한국 전쟁 이후 고착화된 냉전체제의 또 다른 결과가 아닌가 한다.
북한은 물론 공산화된 중국과의 내왕이 막히면서 황해는 교역의 바다 구실을 더 이상 하지못하게 된다. 인천항 역시 화물의 수출입이 주를 이루고 여객 수송은 연안 여객선을 일부 운영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지게 된다. 해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천은 인천-평양간, 인천-군산-목포, 간 정기항로가 개설되어있었으며, 인천-일본-상해 간 부정기 항로가 개설되어 꽤 활발하게 여객운송을 담당하였다.이외에 서해 연안의 항로는 물론 인천-마포 간에도 항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활기 찬 항구의 모습을 보였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인천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이유로 인천은 항구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인천항이 대중가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것은 그런 까닭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냉전적 세계질서의 등장으로 인해 여객항으로서 인천항은 그 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사람보다는 물자가 드나드는 항으로 전환됨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진다.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중국과의 수교가 성사되면서 황해와 인천항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인천항은 주로 수출입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게된다. 사람이 드나드는 항구로서의 기능은 많이 위축되는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인천사람들에게 인천의 항구와바다는 여전히 인천이라는 도시의 가장 큰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새얼문화재단이 발간하는 “황해문화”는 창간5주년기념으로 ‘인천 청소년의 사회의식조사’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조사에서 인천의 청소년들 중 67.8%가 ‘인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바다와 직·간접적 관련을 갖고있는 대상을 지목하였다. 또한 (사)해반문화사랑회가 ‘인천지역 엘리트 정주의식조사’의 일환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인천의 관료, 기업인,정치인, 언론인, 교육자, 전문가 등 사회적 통상 엘리트라고 하는 계층에서 약 51.2%가 ‘인천이나 인천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로 바다,항구, 섬을 들었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대중가요에 나타난 인천의 모습이나 실제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인천의 모습 중에서
바다와 항구, 섬 이라는 지정학적 요건과 관련된 이미지가 인천의 도시 이미지를 결정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있다. 비록 현실의 여건은 항구와 바다를 친숙하게 만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인천의 이미지는 항구도시와 해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발췌 : 인천학연구, 3 (2004.9)
이현식 “대중문화에 나타난 인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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