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천의극장, 음악클럽, 다방, 음반가게들
인천의문화/인천의 노래
2022-02-16 11:36:45
1960년대 인천의극장, 음악클럽, 다방, 음반가게들
60년대 인천과 부평에는 클럽 10개 정도가 영업했다. 신포동 옆 중앙동에 하버 라이트(현 등대 경양식)와 씨맨스는 선원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50년대부터 밴드가 있던 유니언, 위스키 매리도 당시 유명했던 인천의 대표적인 다국적군 클럽이었다. 현재 하버 라이트 클럽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한글로 같은 의미인 인천의 명소로 유명한 등대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버 라이트가 있는 대로에서 신포동 윗길로 가보면 지금도 과거 미8군 클럽으로 명성을 날렸던 클럽들이 라이브 클럽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유니언 클럽이 있었던 건물도 출입구와 벽면에 있는 거대한 기둥이 그대로 살아있고 건물 원형은 그대로지만 외관을 리모델링한 상태이다. 지금은 유니온 클럽은 없어지고 다른 곳에 있었던 키 클럽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길 건너편에는 50년대부터 성업하면서 외국선원들이 드나들었던 씨멘스클럽인 위스키 매리가 과거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50년대까지 혼마치, 즉 본정통으로 불렸던 거리에는 과거 캘리포니아 클럽이 있던 건물에 지금은 재즈클럽 버텀라인이 들어서 인천 재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극장 쇼가 자주 열렸던 신흥동의 세계극장과 자유극장, 그리고 중구 신포동의 외환은행자리에 있던 키네마극장, 동방극장에서 가끔씩 극장 쇼가 열렸고 그 옆에는 라이브클럽이 있었다. 현대극장,인천극장, 미림극장, 문화극장 등 60년대 인천에는 10개가 넘는 영화관이 번성했다. 개봉관은 동방, 키네마, 애관, 인영극장 정도였고 장안, 세계, 자유, 현대, 미림, 오성, 등은 재상영관이었다.
60년대 당시 인천의 재개봉극장들은 극장 쇼도 빈번하게 열렸다. 특히 송림동의 현대극장은 지금도 건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60년대 인천의 많은 시민들에게 영화 관람과 극장 쇼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현대극장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마트와 청과물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세월을 무색하게 한다. 동인천역 앞에 위치했던 별다방, 별 음악감상실은 음악을 좋아하는 인천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랜드마크였다. 60년대 인천 경동에도 태양다방이 있었지만 그다지 음악적이진 않았다.
인천의 고고클럽 국일관
인천 세관 앞 580평 규모의 국일관은 극장 쇼와 패키지 쇼를 했던 클럽이다. 벽돌로 된 큰 창고에다 무대시설을 만들었던 이곳에는 관객이 400~500명이나 들어갔다. 국일관은 초일류 가수들을 빼고는 거의 모든 가수들이 노래했던 인천의 유명 클럽이었다. 당시 가요보다는 팝송을 부르는 가수들이 돈을 더 받았다. 웨이터가 몇 십 명이나 되었던 이곳은 입장료는 없고 술을 마시는 주점 형식이었다.
인천 국일관 주인 원봉선은 젊은 층이 모이는 작은 고고클럽도 운영하며 밴드 오디션까지 보았다. 이곳에서 밴드 마스터를 했던 이관섭은 “한참 영업이 잘되는데 사장이 왜 가수들 노래할 때 반은 연주하고 반은 하지 않냐고 물었다. 곡에 따라 다른 건데 음악을 너무 몰라 환장할 것 같았고 그 때문에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세계극장
세계극장
인천 신흥동에 있던 세계극장에서는 극장 쇼를 많이 했다. 사회는 박흥수, 남철·남성남 콤비, 후라이보이 등이 보았고 극장 쇼의 스타 정원, 쟈니리를 비롯해 캄보밴드 등이 서울에서 많이 내려와 공연을 했다.
별 다방, 음악감상실
동인천역 삼거리에 위치했던 지금의 대한서림 건물은 60년대에 1, 2층은 별 제과점, 3, 4층은 별 다방, 5층은 별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인천의 명물이었던 이곳의 별다방에서는 주로 LP판을 틀었지만 가끔 밴드 연주도 있어 젊은 층이 많이 왔다. 인천 출신 사랑과 평화의 리드보컬 이철호는 동산고등학교 시절 이곳에서 팝송 <스탠 바이 미>를 부르기도 했다.
별 음악감상실은 좌석이 100석 규모였다. 인천의 젊은이들에겐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명소답게 40원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하루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 서서음악을 듣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댄스경연대회도 열렸다. 1등에겐 금반지 한 돈을 부상으로 주었는데 인천 출신 여성들로만 구성된 걸 밴드 레이디 버즈와 혼성밴드 와일드 캐츠의 리드보컬로 활약했던 임종임은 이곳에서 잘나가는 댄서이자 가수로 인천에서 유명세를 날렸다.
출처 : 20세기 인천부평 대중음악 / (재)인천부평구 문화재단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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