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천 출신 가수 및 음악인
인천의문화/인천의 노래
2022-02-16 09:58:46
1960년대 인천 출신 가수 및 음악인
위키리(본명 이한필)
1936년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난 위키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천에서 성장한 60년대의 인기가수이다. 그는 인천 창영국민학교 5학년 때 콩쿨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했다. 명문 경기중학교에 진학해 특활반에서 나팔을 연주하면서 예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서라벌예대와 군 복무를 마친 1962년에 권투선수출신 작곡가 김기웅의 권유로 가수 인생을 시작했다.
미8군 무대에 오르기 위해 사흘간 연습해 오디션에 합격을 했위키리다. 그의 첫 히트곡은 1964년 국내 최초의 노래동아리 포 클로버스의 1집 타이틀곡인 〈저녁한때의 목장풍경이고, 이후 눈물을 감추고〉, 〈종이배)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쇼맨십이 풍부했던 그는 1966년에는 MBC 10대 가수로도 선정되었다. 동아방송 라디오 <달려라위키리>의 DJ로도 활동한 그는 1966년 밤하늘의 브루스」, 1968년 「폭풍의 사나이」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인기가 많았다.
송창식
1947년 인천시 중구 답동에서 태어난 송창식은 신흥초등학교를 거쳐 인천중학교 재학 시절 인천여상 강당에서 열린 경기도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이후 서울예고 성악과에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상 학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1967년 윤형주, 이익균과 음악감상실 세시봉의 전속포크트리오 세시봉트리오를 결성한 그는 1968년 남성듀오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한국 포크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가수들이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했던 그는 청년문화시대를 대표하는 70년대 국민가수로 평가 받는다.
김홍탁
조용필이 꼽은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김홍탁은 1944년 5월 13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미국에 사는 삼촌이 동산중학교 입학선물로 보내온 최고급 펜더기타는 인천의 음악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중학교 3학년 때 밴드를 결성해 사설 기타강습소에서 기초를 익히던 중 인천 동산고 1학년 때 친구 집 2층에 살던 미8군악대 하사관인 기타리스트 척(CHUCK)을 졸라 본격적인 부기스타일의 기타주법을 배웠다.
밴드부원인 학교동창생 장동선, 이백선 등을 모아 5인조 그룹 캑터스(선인장)를 결성했다. 고2가 되자 미8군 오디션에 응시에 보기 좋게 통과했다. 그는 고교생시절에 부평 애스컴 미8군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해서 1963년 록 밴드 키보이스에 스카우트되며 한국 록밴드 역사의 시작을 장식했다. 이후 히파이브, 히식스 등을 거치며 기타의 파이오니어'란 평가를 얻었다.
박상규
1942년 7월 20일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공고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포털사이트 및 각종 언론 자료에서는 그의 데뷔 시점을 1965년 KBS 제1기 전속 가수로 적시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KBS가 제1기 전속 가수를 모집한 것은 1948년이므로 오류로 보인다.박상규는 1965년 KBS 마지막 기수인 제7기 전속 가수 출신이다. 그는 1966년 김상국, 장우와 함께 결성한 송아지 코멧쓰로 데뷔했다. 멤버 김상국이 다시 솔로 가수로 독립해 루이 암스트롱 모창으로 인기를 얻자, 박상규와 장우는 1967년 코코브라더스로 활동했다.
이후 1969년 펄시스터즈 공연에서 만난 김준, 차도균과 함께 포다이나믹스를 결성했다.이들은 같은 해에 TBC 남자 신인가수 후보에 오를 만큼 인기를 얻었지만 박상규가 솔로로독립하면서 트리오로 전환했다. 1970년대 들어 박상규는 10대 가수상을 수상했고 연기자,사회자로도 활동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과시했다.
장미화
서울 서대문에서 출생했으나 장미화는 인천 인화여고 졸업반인1964년 KBS 「전국 톱싱거대회 연말결선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가창력에 미모까지 겸비했던 그녀는 신중현사단의 1호 여가수다. 신중현이 리드한 록밴드 에드포, 걸밴드 레이디 버드 활동으로 장미화는 미8군 사병들을 사로잡았다. 월남 등 동남아 공연을 다녀온 그녀는 서울키튼즈의 리드보컬로 미국에까지 진출했었다. 귀국 후 솔로가수로 독립해더욱 인기를 누렸다.
임종임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난 임종임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댄스,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여고시절부터 부평 애스컴과 인천의 다운타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1968년 인천출신 여성들로만 구성된 걸밴드 레이디 버즈활동 이후 서울키튼즈로 미국에, 와일드 캐츠로는 동남아에 진출해 현지에서 발표한 음반이 80만장이나 팔리는 빅히트를 기록했다.70년대부터 김혜숙이란 예명으로 많은 독집을 발표했고 동남아에서 귀국한 후 와일드 캐츠(들고양이들)의 리드보컬로 마음 약해서) 등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길교
인천 출신 여성들로만 구성된 걸밴드 레이디버즈의 초대 리드보컬을 거친 이길교는 친자매들로 구성된 70년대 인기 여성트리오 쿨시스터즈(도토리 자매)의 맏언니로 활동했다.
'데블스'의 김명길 연석원 채완식
밴드 데블스의 리더 김명길은 대한제분의 총 책임자였던 아버지 김익성과 어머니 유순분의 3남 1녀 중 둘째로 1947년 6월 26일 인천시 화수동에서 태어났다. 인천 송현초등학교 때는 등교 길에 행진곡을 들으며 흥얼거리길 좋아했다. 동인천중 음악 실기 시간에 어려운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인천공고 기계과에 진학해서는 경기도 대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
1967년 밴드 앰비션을 결성한 그는 인천 중앙동의 미군 클럽 '캘리포니아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악마들이란 뜻의 '데블스로 밴드 이름을 수정해 AAA쇼단에서 연주했다. 당시 쇼 단에 합류한 나훈아는 지금은 트로트의 황제이지만 멤버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노래 반주를 부탁하던 무명 가수였다. 데블스는 1970년 7월 '제 2회 플레이보이 배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 대회에서 해골이 그려진 옷을 입고 시체로 분장한 쇼걸을 담은 관을 끌고 등장해 화제를 모으며 구성상을 수상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고고70]은 데블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데블스의 오리지널 멤버이나 군 입대로 밴드를 탈퇴했던 연석원은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에서 줄곧 성장했다. 진지하게 음악을 연구했던 그는 대중음악계의 거물급 인사로 통한다. 70년대 중반 '연석원과 아웃사이더'를 결성해 활동하다 솔로로 독립했다. 민요를 채보해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어부>가 수록된 독집은 의미심장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편곡자로 변신했다. 그는 KBS 서울 올림픽 전야제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리드보컬 채완식은 인천 송림동에서 태어난 인천토박이로 동인천의 도레미음악학원에서 강사로도 일했다.
윤승칠
인천출신 인기가수 윤일로의 막내 동생으로 차밍 가이스, 비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제 1회 주간경향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김대환
1933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난 김대환(호는 흑우(黑雨), 호적에 강대환)은 어린 시절 가정사가 불우했다. 5살 때 외삼촌의 양자로 들어간 이후 줄곧 인천에서 성장했다. 세계적인 재즈 색소폰 연주가 강태환은 호적상 그의 동생이다.1946년 동산중학교 브라스밴드부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동산고를 졸업한 그는 1953년부터 공군 군악대를 거쳤다. 이후 60년대부터미8군 무대에서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년 김트리오를 결성한 그는 조용필, 이남이, 최이철 등과 활동했고 1975년 한국그룹사운드협회 초대회장으로도 선출되었다. 1978년에는 국내 최초의 프리재즈 밴드 '강태환 트리오를 결성했다. 2001년 중앙대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열 손가락에 6개의 북채를 끼우고 북을 치는 '타악의 명인으로 불렸다. 1990년 쌀 한 톨에 《반야바라밀다심경》 283자를 새기는 세서미각(御書微刻)으로 세계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 2004년1월 한성대에서 명예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4년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강태환
1944년 인천에서 태어난 강태환은 신흥초등학교 시절부터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했지만, 이후 색소폰으로 악기를 전향했다. 1968년 국내 최연소로 재즈 밴드의 리더가된 그는 1978년 타악주자 김대환과 트럼페터 최선배와 함께 국내 최초의 프리재즈 밴드 강태환 트리오를 결성했다. 1988년 트리오 해산 후에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마치 구도자처럼 색소폰을 불던 그는 몇 십분 동안 숨을 끊지 않는 호흡법으로 연주를 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진동
이북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피란지 부산을 거쳐 인천 석바위와 부평 십정동을 거쳐 중학교 때부터 애스컴정문 앞 신촌에서 살았다. 중학교 때 애스컴 클럽에서 연주했던 연주인에게 전자기타를 배운 그는 고만석악단의일원으로 애스컴에서 활동했다. 이후 밴드 라이더스와 히파이브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한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Gibson Les Paul 기타와 Marshal Amp를 사용한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최영훈
부평 올스타빅밴드 트럼펫 주자였던 최영훈은 1969년 제대 후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해 화양소속으로 부평 애스컴 미8군 클럽 무대에서 연주했다. 일반무대 극장 쇼와 가수들의 음반녹음에도 다수 참여했다.
그리고
이중혁 파이브 핑거스 멤버, 인천 동산중 출신, 템페스트 기타리스트
김정택 와일드캐츠(들고양이) 마스터, 키보드, 인천 동산중고등학교 출신
서성원 딕패밀리 리더, 인천 동산중고등학교 밴드부 출신
김정택 인천 동산중고등학교 출신, 들고양이 멤버
이세혁 딕패밀리 기타리스트
박효성 동산중학교 밴드부 출신. 라스트 찬스 베이스 연주자, 검은나비 멤버
이경전 트리퍼스 기타리스트, 서울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때부터 인천 할머니 집에서 성장했다. 동인천 미락제과 2층에 서 도레미 음악학원 운영. 〈바람과 구름) 작곡
출처 : 20세기 인천부평 대중음악 / (재)인천부평구 문화재단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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