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오갈 곳 없는 예술인들의 열린 공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2 07:23:5
오갈 곳 없는 예술인들의 열린 공간
해방직후 5년 시절이 하 수상한때 '만남의 장'
문화 불모지에 사진전시·좌담회 장소로 활용
초대 인천문화원 원장 한기창씨가 경영하던 경양식집 �시 가 있던 자리.
항도다방도 이 근방에 있었다.
흐르고 싶은 인천 - 길에서 묻다 4 - 다방
공간의 개념이란 사람 살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처소(處所)이지만 예술면에서 본다면 전시예술과 공연
(무대)예술 쪽에 더 필요한 처(處)다.해방직후의 모습은 억눌린 상황에서 탈출로 한껏 들뜬 시국이었고
그 뒤를 이은 동란, 불과 5년의 세월은 예술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짧고 허망한 세월이었으며 만나고 헤어짐(예술인 간)이 아쉬운 세월이었으리라. 짐작컨대 쉽게 만나고 길게 이야기할 곳 역시 다방이란 곳이 아니었겠나 싶은 시절의 그 곳은 낙원과 같은 곳으로 생각해도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리라.
인천에서 처음 생긴 다방이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더듬어 가 보건만 명료한 대답은 커녕 글로 남겨진 것 하나 없음이 안타깝다. 회화부분의 예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진예술인들 역시 다방에서 역사를 이루게 되었으며 그 시절 다방은 낙원만이 아니라 예술인들에게 있어서는 만남의 공통분모성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날 경기매일신문 앞에 있던 유토피아 다방이 있던 자리.
광영희(光影會). 일인(日人)들이 주축이 됐던 사진단체였지만 작품의 우월성을 가졌던 인천인들이 모여 '제물포 사진 동지회'를 결성하게 이르니, 이도 46년 5월 신포동 '파로마'다방으로 사진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인천사단(寫壇)의 효시를 이룬 곳이다. 이들 역시 정용복 회장을 주축으로 내동 금융조합 2층에서 사진전의 효시랄 수 있는 동인전을 개최하였으나 시작 전(展)이 마지막 작품전이 되고 말았다.
해방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의 열풍에 휘말려 좌충우돌하던 예술인들은 '중앙문총'이 47년 창립을 계기로 다시 결집, 반공만화 전시를 시작으로 '문총인천'이 50년 6월12일 결성되었으나 10여일 뒤 동란이 발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9월15일 수복과 함께 복귀한 문총회원들은 10월23일 시인 조병화의 집에서 발대식을 갖고 표양문, 신태범, 우문국 등을 대장과 부대장(2명)을 선출 '반공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문총예술제를 2회에 걸쳐(금융조합, 현 기업은행 인천지점건물) 미술, 서예, 사진분야에서 출품한 53점의 작품을 가지고 51년, 52년에 치렀다. (1회전은 장르별 분산개최)
두 번째 문총예술제 두 달 앞서 열린 우문국의 또 다른 전시회를 주목하며 '등대다방'으로 들어가 보자. 기억해 낼 수 없는 56년전의 '향토인형전'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전시회일까. 서양화를 하는 우문국의 인형전! 향토사랑의 극치에서 오는 소산이며, 다 장르에 걸친, 오늘날의 이야기로 푼다면 '엔터테인먼트'한 예술인 우문국이라 지칭해 드려야 할까보다. (피난 나오시기 전 마라톤 선수였다고 하니 더욱 그러함)
또다시 달포 후 등대는 불을 밝히고 있었나보다. 문헌에서는(실수인지 모르지만) 동란 2주년 기념행사라 되어있음이 석연치 않지만, 소설가 박종화가 인천에 옴으로 열린 '문화좌담회'가 또다시 '등대다방'에서 열리게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열린공간의 부재인가, 또 다른 대화의 광장으로 빨려들어 갈 소(所)가 없어서 그리 됐을까. 문화의 불모지에서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최초의 장소로 선택된 곳이 다방뿐이었을까. 그나마 시절이 하 수상한때 고마울 수 밖에. 주인(마담)은 어떠했을까? 차 한잔에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는 고등 룸펜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궁금도 하다.
근 현대사의 최전방에서 오롯하게 존재의 깃발을 휘날린 인천의 문화발상처가 다방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함이 어쩜 슬프기도 하지만 항구도시 인천이라 가능한 행복(?)이라 해두자. 예술이 아닌 또 다른 생활사 이야기로 본다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어쩌면 관람자, 청중)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벽쪽으로 붙여 논 탁자와 의자, 그리고 일정하게 열어 논 굴곡의 통로사이로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의 편이성이 가장 잘 살아있는 곳, 다방은 전시공간으로서 안성맞춤이라 생각되어 선택된 공간일성 싶다.
55년 '유토피아'다방의 문총주최 시화전, 56년 10월에 개최된 박영성 서양화전 또한 '유토피아' 다방이였으니 정녕 이상향으로 가는 길 아니면 길목인가. 59년 초봄'항도'다방에서 김종휘 수채화 개인전을 끝으로 50년대 말을 장식한 다방 전시문화는 60년대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져갔다. 더욱더.
/김학균 · 시인
#인천 #흐르고싶은인천 #길에서묻다. #김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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