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분 할머니(81)가 들려주는 ‘살아온 이야기’...
仁川愛/만석부두 관련 스크랲
2007-03-05 15:19:29
박순분 할머니(81)가 들려주는 ‘살아온 이야기’...
죽은 우리 영감하고는 내 나이 23살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어. 영감하고 나하고 나이로 7년 차이니까 그때 영감은 30살이었을거야.
영감 만나기 전에 나는 15살에 한 번 시집을 갔었어. 조강지처다 해서 연지, 곤지에 족두리 쓰고, 사모관대 쓰고 식 올리고 살았지. 그런데 못 살고 시집에서 나왔어. 남편은 좋았는데 시어머니가 못 살게 했지.
나는 시어머니가 하라는데로 다 했는데도 시어머니는 나를 못 마땅해 하며 못 살게 굴었어. 시어머니가 너무 사나와서 못살겠더라구. 나중에는 우리 부부가 자는 가운데 와서 드러 눕기까지 했으니까. 결국은 시어머니가 나가라고 쫓아내더군. 그러니 어떡해 그냥 나와야지.
시집에서 쫓겨나와 청량리에서 혼자 살았어. 친정 엄마, 아버지는 전에 돌아가셨고, 오빠는 서산에 살고 있고 하니까 자연 친정하고도 멀어지더군.
처음 사람하고 헤어져 가지고 나와서 저기 하니까 동생이 좋은 사람 있다며 영감을 소개한거지. 동생이 예전에 이동네 살았거든. 동생이 일본사람들 밑에서 일했는데, 영감하고 서로 비슷한 일을 했으니께 서로 알고 해서 나를 소개한거지.
우리 영감 소개할 때 동생이 ‘일본 사람 밑에서 일을 나하고 같이 본다. 괜찮은 사람이다’라며 소개했어. 얼굴이야 가끔 동생네 집에 놀러오면 보았는데 동생이 계속 사람은 괜찮다며 만나보라고 했어.
그래서 만나보니 인상이야 좋았지. 아주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글도 되고. 동생이 소개하며 말한 것도 있고 해서 믿고 같이 살려고 이 동네로 내려왔어. 청량리에서 옷 보따리 하나 들고 내려오면서 바보같이 아무데서나 잘 살면 그것이 행복이다라고 생각했었어.
내가 시집을 한번 갔던 것처럼 영감도 한번 장가를 갔다가 실패하고 이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었어. 원래는 저기 전라도 목포에서 살다가 올라왔는데 아버지,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은 이북에 살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는 이북에 마음대로 올라갈 수 없었잖아. 그러니 자주 오가지를 못했어. 영감도 나를 만나면서 혼자 살아서 외롭기도 하고 해서 나랑 살면 되려니 하고 생각 했나봐. 영감하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합쳐서 산거지.
이곳 만석부두 앞에서 살림을 시작했는데 순 진흙으로 지은 집이었어. 지금 한국유리 있는 쪽이었는데 그때 이쪽 대우쪽에는 일본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우리가 살림을 차린 곳에는 조선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살림을 차리고 살아보니까 인상좋던 영감이 생활에는 엉망이었어. 집에는 신경도 안쓰고 밖으로만 돌아다녔어. 돈도 안벌어오고 말이야. 그래도 옛날에는 뭐 그랬거나 말거나 같이 살기로 했으니까 어쩔수 없이 살았어. 그때는 이집 나가면 죽는 줄 알았어.
살면서 영감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 말도 해. 6.25때 난리 났을때 작은마누라만 싣고 피난간다고 가버렸어. 자기 부모하고 가족들도 다 놔두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시부모를 모시고 저기 구월동에 잠깐 피난갔다가 영종으로 갔었어. 그러고는 결국 다시 이 동네로 와서는 여기서 전쟁을 겪었지.
피난 갔던 영감은 전쟁이 끝난 뒤에나 돌아와서는 일도 안하고 나가서 따로 살다가 가끔 들어와서는 돈을 타 가기도 했어. 나중에 나이 들어서는 중풍들어 2년동안이나 내가 뒤 치다꺼리 다 했네.
그런 영감이 69살에 죽었으니 벌써 23년 전이네. 지금은 영감 생각해도 아무 생각도 않나. 원망해보았자 뭐해 다 내 팔자가 그런데. 자식들 때문에 살아야지, 살아야지 했지.
(강길재)
'만석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고가도로 밑에 있던 하꼬방 집들 철거되면서 만석 1,2,3차 아파트로 흩어져.. (0) | 2023.05.02 |
---|---|
4.3민주항쟁겪고, 목포에서 6.25치르고... “지금은 전쟁 없응께 살기 좋아" (0) | 2023.05.02 |
19살에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고 2년있다 만석동으로 와... (0) | 2023.05.02 |
남편과 조카둘, 동네사람들 5명 징용으로 끌려가... (0) | 2023.05.02 |
전옥순(88)할머니가 들려주는 6.25 이야기 (0) | 2023.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