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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이야기

19살에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고 2년있다 만석동으로 와...

by 형과니 2023. 5. 2.

19살에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고 2년있다 만석동으로 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5 15:18:51

 

19살에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고 2년있다 만석동으로 와...

 

내 나이 19살에, 우리 집 신랑은 27살에 신랑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어. 결혼해 갖고 고향 순창에 한 2년 있었나. 그란디 시골에서 살라며는 땅이 많아야 하는디 땅이 없으니까, 결국 우리 영감이 시골에서는 머슴살이라고 할까, 돈 많은 집 가서 2년인가 살더라구. 그러다 22살에 낳은 우리 큰애가 돌 지나갖고는 여기를 왔네.

 

그전에 우리 막 와서는 진짜 어려웠지. 전에 우리 집 영감도 부두에서 하역 일을 했는데. 돈이 제때 나오질 않아 집에 돈이 없었어. 긍께 어디 반장네에서 쌀로 한말 갖다가 먹고 진짜 그때는 어려웠어.

 

그러다 우리 여기 와서 딸 하나 낳았는데, 딸 낳고 몸조리가 어디 있어. 영감이 딱 삼일 해주고는 아이고 나 이제 꼼짝 못하고 죽겄다. 나도 몸살 났다고 누워 부러. 아고 내가 일어나야지 하고 일어나서 했는데. 부엌도 지금처럼 이렇게 뜨뜻하면 좋게. 부엌도 한데 같이 해 갖고, 나무라고 그게 껍줄인가 그걸 갖다가 물이 죽죽 나는 걸 불 떼도 세상에 연기만 나고 방이 뜨뜻하지도 않고.

 

고생하면서도 자식은 4남맨데 근데 뭔 지랄로 4남매를 낳았나 몰라. 근디 막내는 어디 놀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어. 긍께 죽은 우리 막내가 2학년인가 댕길 때인가 저기 옆집 할머니랑 깡깡 일인가 뭔가 뺑끼 칠하고 댕기면서 애기를 용돈 좀 준다고 돌아다녔어.

 

배 뺑끼 일은 저 화수부두에서 15년은 더 했는가봐. 그러니까 일은 엄청 오래 했는데 계속 못 나갔어. 있으면 가고 없으면 안가고. 내가 인자 가만 생각하면 썩은 급살 맞게 그냥 툭툭 털고 여 대우만 댕겼어도, 내 친구 15천을 퇴직금 받아갖고 나오더라구. 거기 댕겼으면 내가 떵떵 거리고 살았는디. 이이 신랑 놈의 영감탱이가 못 댕기게 하더라구 그쩍에는. 이 거지같은 뺑끼 일이나 댕기래야. 이유야 있지. 회사 가면 딱 매여 갖고 일찍 가 갖고 늦게 오니까 살림 못한다고 말이여.

 

뺑끼 일은 엄청 힘들어. 배에 녹이 이렇게 퉁퉁 나면 막 옆이고 헌데고 암데나 막 두둘기 갖고, 벗겨 내 버리고는 이제 싹 쓸어 내고는, 빨간 거 녹장 칠해고, 그 위에다는 회색 같은 것 두 번 칠혀. 아휴 두 번만 칠하나 두꺼우라고 몇 번 칠허지.

 

배 밑창을 팔을 쭉 내밀어 긁으면 이 팔이 돌아가도 안혀. 녹 베끼고 또 뺑끼를 할 때도 손을 쭉 넣어서 막 문질렀어. 그렇게 하면 고개하고 온몸이 아퍼 고생 많이 했어.

 

내가 뺑끼 일하면선 그쩍에는 남자가 없었어. 남자들 밥통 같은 것들 한나절 일하면 도망가 분다니까. 저녁때 보면 없어져 부러. 여자들은 이렇게 강혔어.

 

뺑끼 일을 계속하다가 언제는 한번 얼굴을 디었어. 저기 바다에 떠 있는 멸치잡이 어선같이 고기 잡는 식당을 칠 한 적이 있어. 식당을 다 칠하고 냄새가 나서 한 20미터 정도 저기 만치 가서 친구랑 둘이서 안거 있었어.

 

근디 아 그 썩을 놈의 용접하는 놈이 배 꼭대기 올라가서 용접을 하다 그냥 불똥을 뺑끼칠 한 디로 딱 떨어져 갖고는 불이 우리 안거 있던디로 콱 와 벌더라구. 아주 순간에. 그기 뺑끼가 그렇기 무서워. 가스가 차 갖고 파란 불이 꽉 오니까 가까이 안겼던 친구는 더 디어불고 나는 약간 덜 디었지.

 

그래갖고 하 엄청 또 고생했어. 그래갖고는 이놈의 일 하다가 죽겄다 하고는 내가 한 칠년을 놀아버렸어. 집에 있다가 88년도에 우리 영감이 폐암으로 떠나고 나서 집 형편이 안되아서 안되겠더라니까. 다시 일을 나갔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아이엠에프 땐가 배일이 하도 지겨워서 딴 일로 갔어. 힘들고 지겹고 일을 뜨내기로 하니까 돈도 목돈이 안되고 푼돈이 되야 불더라구.

 

그래갖고 인자 인테리를 하고 돌아다녔어. 역시 페인튼데 음석집이나 아파트 30, 40평 하는 집을 다시 인자 깨끗이 새 것 같이 수리가 들어가잖아. 그런디서 일을 했어.

 

인테리는 문 같은 것을 빼빠로 문질고 요로콤 반질반질 하게 막 왁스같이 해 갖고는 그것을 신나도 아니고 그 독한 락카를 그렇게 뿌리면은 아주 빤질빤질해져. 근디 락카를 막 기계로 뿌리면은 아주 얼굴이 그냥 벌겆고 락카를 맡으면 막 속이 시럽고, 그냥 귀에서 노래 소리가 나고 했지.

 

인테리는 페인트도 어려워. 아파트 35평 가면은 삼일을 한다니까. 이만한 바늘구멍만 있어도 그거 또 빠데로 다 멕이고 칠해야해. 또 일을 잘못하면 욕먹고. 또 우리 오야지가 미국서 십년 있다가 온 사람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 오야지 때문에도 어엄청 힘들었어 아주. 어떻게나 까다로운지.

 

근디 젊은 사람 붓질도 못하는 사람을 데려오면 내가 다 가르쳤어. 아따 이놈의 인간들이 인자 언제 배웠냐 하고는 빼빠질 힘든 것은 인자 여자인 나를 시키네. 내가 나이 먹고 늙고 그러고 즈그들은 인자 쉬운 칠 같은 그런건만 할려고 하고 말이여. 같이 좀 하면 얼마나 좋아. 글고 힘든 천장 높은디 빼빠질 할려고 하니 미치겠더라구. 그렇게 천장 하다가 우마 밑에 대 놓은 신나깡통 밟고 내려 오다가 넘어져서 팔이 딱 부러져부네. 그래서 내가 손을 딱 놨어.

 

그래도 인테리 삼년 한게 약간 밥벌이가 되더라고. 삼년사개월하고 삼년만 더할려고 했는디 팔도 부러지고 해서 내가 와 부렀어.

 

지금도 가끔 친구들 일하는데 가면 지금은 수월하게 일 하더라구 우리는 힘들게 일했는데 말이야. 한 삼년만 더 할 걸 아쉽더라구. 지금도 가끔 집에서 뺑끼칠 하면 못 할 것 같은디 잘 나와. 근데도 눈이 어두워갖고롬 그게 할 수나 있어. 글코 인자 심란해 내가 옛날에 하던 것도 생각해보면 아이구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먹고 살았나 싶으고.

(강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