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순(88)할머니가 들려주는 6.25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5 15:17:21
전옥순(88)할머니가 들려주는 6.25 이야기
내가 살던 고장은 황해도 해산면이라고 8.15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그어졌잖아. 그때 우리 고장은 삼팔선 남쪽에 있었어. 6.25가 난 날에도 우리는 처음에 뭔지도 몰랐어.
6.25 나던 날 새벽에 쿵쾅쾅쾅 했거든. 새벽에 쾅쾅해도 무슨 소린지도 몰랐어. 총소리도 모르고, 대포소리인지도 몰랐다니께. 무슨 쾅쾅하는 소리가 처음에는 가깝게 들리다가 점점 멀리 가긴했어. 나중에 보니 50리 위에 있는 독산이라는 데서 난리가 난거드만.
그날 낮에 우리는 밀 부리러 밭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무섭게 오는게야. 우리 고장 염전에 배들이 많았거든, 그게 사람들이 배 타러 내려오는 거야. 밤새 쾅당 거리는 소리 듣고는 그냥 우리 고장으로 나오는 거야. 배타고 인천, 서울로 건너 갈려고.
그러니께는 우리도 처음 쿠당탕거리던 날 이 인천까정 배타고 왔어. 우리는 배가 없었은께 조그만 누구네 배를 얻어 타고 처음엔 저 강화 교동으로 건너갔어. 거기 피난민들이 많았어. 그걸 순경들이 지나가는 배를 뭐 총쏘고 손짓하고 해서 불러서 50명도 태우고, 100명도 태우고 했어. 우리도 그렇게 배를 또 탔지.
일주일만인가 교동 섬에서 저 괭이부리에다 갖다 댔는데, 금세 나왔다 들어간다고 피난살이도 안챙기고 나왔는데 여기 있을 수가 없겠더라구. 그래 타고 왔던 배를 다시 타고 교동으로 다시 돌아갔어.
교동에 내려서 매함리라는데 가서 그럭저럭 있다가 가지고 있던 쌀 한말을 주고 조그만 땟마(뗏목) 하나 얻어 황해도 연백 갯바닥에만 데려다 달라고 그랬지. 갯바닥에만 오면 지리를 아니께 집을 찾아올 수 있잖아.
갯바닥에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데 달이 밝았어. 들어가는데 무서우니께 우리 뒷동산에 가서 노할머니 산소 옆에 가서 식구들 앉아 있으라고 하고 나만 갔어. 우리 할아바이는 가만 앉아 있어야지 무서우니께. 남자들이 붙잡혀 가면 아이들이 더 무서우니까, 나 하나 죽으면 그걸로 끝날려고 나만 먼저 가서 집안을 살펴보고 나서야 식구들이 집으로 들어갔지.
그러니께는 집에 돌아가서는 남자들은 다 숨어 있었어. 인민군들에게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우리 할아바이도 우리 조카 애들하고 같이 숨었는데 좁잖아. 좁으니께는 그래도 나이 먹은 사람은 좀 낫겠다고 나와 있다가 인민군이 와서 붙잡아 갔어.
우리 할아바이를 붙잡아다가 인민군들이 거기 연안읍 독산밑에 물탱크가 있었는데 거기다 갖다 잡아 넣은거야. 그러니께는 나는 영감 죽을 때 같이 죽을라고 거길 가니까 인민군들이 나보고 그냥 가래. 소문을 들으니께는 무슨 심사를 받고 그놈들이 놓아준다는 거야. 그러니께 어느 날 심사 받을 줄 모르니껜 그냥 가서 지키는 거야. 나올때까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가도 비행기가 떠서 여기로 오면은 아무 집으로나 그냥 부엌 같이 음침한 구석 같은 디 이런디로 어떻하든지 비집고 들어가서 숨어 있는 거야. 그렇카다 비행기 소리가 작아지면 또 나와서 기다리지.
나 혼자만 그런게 아니야. 우리 동네 사람이 7명인가 그렇게 붙잡혀 갔는데 그거 지키다가 우리들도 너무 굶으니께는 배고프고 살수가 있나, 그래서 그냥 왔어. 집으로 도로 오니께 그 이튿날 밤에 우리 할아바이가 왔대.
그러니껜 저녁에 나온 할아바이를 이튿날 아침 한 끼 먹이고서는 배 잡아가지고는 그냥 교동으로 보냈지. 남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때는 그냥 중젊은이도 다 내보내고는 연백에는 우리 여편네들 세동서만 집에 있었던 거야.
인민군들이 우리 고장에 있을때는 인민군들이 우리 고장에선 잘 수가 없거든. 남쪽에서 쳐 들어올까봐 무서워서. 그러니껜 우리더러 낮에는 논에서 농사를 짓다가 5시에 저 읍면이라고 30리 위에 있는 곳에서 자고서는 또 내려와서 농사 짓고 하래. 그렇게 저희가 올라가면서 다 몰고 올라가는거야. 올라가면서 밥도 깜깜한데서 먹었어. 김치 같은 거 먹으면 소리 날까봐 무서워서 호박만 지저 먹었어. 그 물렁물렁하게 지저 가지고는 깜깜한데서 소리 안 나게 먹을려고.
그러고 또 그럭저럭 하면서 여름을 났는데, 이번에는 인민군들이 우리를 아주 이북으로 붙잡아 간다는 소문이 났어. 그러니께 처음에는 잠을 자러 가는 척 했어. 그러다가 아카시 낭구(나무) 우거진데로 숨었어. 나하고 동서들하고 같이. 그렇카다가 그냥 각자로 다 어떻게 어떻게 또 헤어졌지. 그게 한데 다 뭉쳐 댕기면 잽히니껜.
동서들과 헤어져 갖고 집에 왔어. 그라곤 집 안뜰에다가 멍석을 펴고 솜이불을 두껍게 몇 겹씩 한 세네개씩 올리고 그 안에서 잔거야. 긍께 방에서 자면 창구녕들이 있으니께 자는 소리, 숨소리들 나갈까봐 무섭잖아. 안뜰은 사방이 방이고, 대문 같은 걸로 막혀 있어서 그래도 안심이 되았어. 그기가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있는거지. 숨이 맥히거나 말거나 아니면 추우니께 숨 맥히는 걸 몰랐지.
그러다가 어떻게 그렇게 우리 조카 사위가 교동에 있다가 이북으로 다 데려간다는 소문이 나니께, 저희 식구들 섬으로 데리고 나올려고 군인들하고 같이 들어온거야. 그 조카 사위하고 동네를 돌아 댕기며 식구들을 찾아서 섬으로 나왔네. 시댁 식구들 7남매가 홀딱 나오고, 시어머니 노인네도 나왔어. 그때가 추운 동지달이었지.
섬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들락날락 했어. 북한땅이 가까우니까 섬에 군인들이 많았거든, 군인들이 그땐 정보 알려고 몰래몰래 밤에 들어갔거든 그 군인들 따라서 들어가서는 감춰논 쌀도 가져오곤 했어. 그렇게 8월까정 들어갔었는데 그러곤 지금까정 못 들어가고 있네.
(강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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