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석동이야기

남편과 조카둘, 동네사람들 5명 징용으로 끌려가...

by 형과니 2023. 5. 2.

남편과 조카둘, 동네사람들 5명 징용으로 끌려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5 15:18:10

 

남편과 조카둘, 동네사람들 5명 징용으로 끌려가...

 

우리 고장은 산골이 아니고 그냥 벌판이야. 황해도 연백이라고 하는디 그냥 그냥 벌판이지 저 한 사십리까징도 여름에 들에 일하는 사람들이 하얗게 백로 앉은 것 처럼 뵈였지. 뒷동산도 없었어. 허허벌판에 앞에 쪼끄마한 천배산이라고 하나 있었지.

 

내 나이 19살에 해산면으로 시집을 왔는데 바다가 껴서 있었어. 그러니깐 나는 바다에서 하는 걸 할 줄 모르잖아 나는 50리 위 벌판에서 살았으니깐. 그래 내 생각에 후담에(나중에) 따로 살면은 조개도 잡아다 먹고 맛도 쒀다 먹고 하겄다해서 펄 일을 배울려고 했지. 근디 집에 일도 많은데 펄 일을 할 줄 나를 그거 하라고 가라고 놔주나 시어머니가. 안 놔주지. 그래 시어머니 몰래 몰래 시누이들 따라서 그 거이 맛을 잡으로 나가는 거야.

 

그거 몰래 나가서 그거 잡는 걸 밸려고 한 해 한번씩 가면 맛 구녕 어디야. 이거야, 이거야하고 물어보고 다녔어. 펄에는 다른 구녕이 똥글똥글한 것이 많거든 그냥 뽕뽕뽕뽕 뚫려진. 잡구녕이 많으니께. “이거야, 저거야그러면 아 요거야 요거그렇게 알켜주면 그래도 열심히 잡았지.

 

내가 16년생이잖아. 그때 일정 시대를 한 2528살 먹도록 일정 시대를 겪었어. 나 자랄때는 암만 일본놈들이 와서 살아도 세월이 좋았어. 처음엔 간섭은 안했지. 나 쪼끄매서 갓 나서 일본놈들 들어와서 저기 했대는데 그거는 내가 모르잖아.

 

일본 정치 말년엔 우리가 아주 살기 힘들었어. 공출 자꾸 해가고 방공연습 나오라 뭐 나와라 하고. 바쁜 사람들 농사철이 되어 일 해야 되는데 자꾸 그런거 끌려댕겼지. 일본놈들이 하라니께. 그때 일본놈들이 이리라면 이리고 저리라면 저리고 꼼짝 못했어. 거기시 될 때 한 삼년 앞두고는 되게 힘들었어.

 

그러니께 점점점점 왜정 말년 적에 그냥 막 공출해 가고 그놈들이 저 싱가폴로 들어갈 적에. 공출 하는 건 쌀로 가져가는 거야. 우리 식량, 열식구면 열식구 먹을 거 그거 남겨 놓고 다 달라는 거지. 그러니께 식구들 넉넉하게 남겨 놓나 아주 빠듯빠듯하게 그냥 모자랄 정도로 남겨 놓고 다 가져간데.

 

긍게 몰래 감추는 거지. 논 두렁 아래 같은데, 집 뒤에 같은 데자꾸 땅 파고 묻었지.쌀은 항아리 큰 것들, 쌀 댓가마니도 들어가고 세가마니 들어가고 그런게 있었어. 우리 식구가 12식구였어. 일년 먹을 거면 많았지. 우리 식구하고 일하던 사람들도 먹었어야지. 그러니께 그저 맨날 항아리들 다 그냥 땅속에 묻어서 놓고 쌀을 숨겼지.

 

그라고 그 수비대들, 전쟁은 안해도 일본사람 군인들인디 말하자면 미군들 와서 여기 와서 사는 식으로 있는 군인들이 있었어. 수비대들 어디매 있다가는 한 축씩 나와서 연습해 총대 매고 말 타고. 그땐 자랄 적이니까 알지 못해도 서울 가는 만큼 길이가 그렇게 늘어섰는지도 몰라. 끝에서 끝도 몰라.

 

하였튼 한축씩 그렇게 나오면 신작로에 늘어서서 다 말 타고 나오는 거야. 말 타고 나와서 동네에 와서 말들 뭐 콩 같은 것 있으면 말 매기겠다고 달라고 해. 그라면 없는 사람은 못해도 있는 사람들은 다 퍼다 주곤 했어.

 

거기는 정신대는 없는데 징용으로 많이 갔어.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우리 할아버지도 징용으로 뽑혀 갔는데, 우리 집안에서 조카 둘, 동네 사람들 해서 하마 7명인가 징용으로 뽑혀갔어. 징용 간다고 돼지 잡고, 뭐 미수가루하고 엿 고고 다 해서 해가지고 여기 부산까정 왔었어.

 

우리 동생 남편은 군인 가고 보름만에 815해방이 됐는데, 저기 북쪽으로 들어가서 못 나왔어. 긍께 뭐 여자들 끌어가는거 정신대 말이여 이북에서 그렇게 많이 안 끌어 갔는데, 처녀들은 다 데려간다 하니까 동생 나이 19살에 부랴사랴 신랑 찾아서 시집을 보냈지.

 

보냈는데 보내고 나니깐 7달 만에 군인을 간거야. 처음에는 동생 남편 군인 안 갈려고 우리는 숨길 자리까정 다 마련해 뒀거든, 자꾸 가면 못 온 다고 말 하는데 보낼려고 그래. 근데 그 신랑의 형이란 것이 군청에 댕겼는데 자기 혼난다고 동생을 못 숨기게 했어. 그러니껜 못 숨고 그냥 갔는데 보름만에 그냥 해방이 됐어. 그로고선 못 나왔지.

 

해방 되는 날 나 이빨이 그때부터 아프고 해서 뽑았거든 연안읍이라고 하는디 가서 일본사람한테. 뭐 이층에 있는디 뭐이 시꺼만 놈의 비행기가 둥둥둥 냅다 떠 오잖아. 야뜨막하게 남쪽에서 많이 떠오드라고. 근데 뭐 이따만 한 것이 시커먼거이 비행기에서 쑥 나오고 쑥 나오고 그래. 근디 일본사람이 이층에서 내려가더니만 한참만에 올라와. 그래 내가 그게 뭐이 비행기에서 이만큼 한 것이 나왔소. 그게 뭐 댔소하고 물었지.

 

그러니께는 그 일본 사람은 낙심천만해서 그냥 한숨만 하고 있어.그래서 왜 그러냐고 그러니께는 삐라가 떨어졌다고 그래. 내가 삐라가 뭐냐고 다시 물으니께는 저기 일본이 손들었데, 손들었데 그래. 손들은게 뭐지하고 내가 물으니께는 나 일본으로 들어가야 되요.” 그러잖아.

 

일본 사람들 들어 가면서 되게 울고 들어갔어. 하나도 못 가져 가게 하니까. 저희 살림살이가 아무리 좋고 뭐 좋아도 가져갈 리어커 그것만 가져갔지. 그렇게 삐라가 떨어지면서 해방 된질 알았어. 바로 8.15일 당일이야.

(강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