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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이야기

단옥선 할머니(78)의 연평도 피난살이

by 형과니 2023. 5. 2.

배급 떨어지면 세식구가 하루종일 누워있었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4:38

 

배급 떨어지면 세식구가 하루종일 누워있었어

 

 

단옥선 할머니(78)의 연평도 피난살이

 

 

뭐 얘기할거이 있어야지. 그저 피난 나온 거 그것 밖에 없어.

 

원래 고향이 옹진군 동강면 사이리인데, 14살 때 근처 동강면 금산으로 시집을 갔지. 그때는 왜놈들이 '처녀공출'한다고 딸 가진 부모들이 다들 일찍 시집보내고 했으니까. 6.25가 난 게 내가 26살 때인데, 애 아바이랑 7, 3살 먹은 딸 둘을 데리고 피난을 나온 게야.

 

전쟁이 난다는 얘기가 동네에 돌아서 끝섬으로 피했었는데, 끝섬가고 그 다음날 전쟁이 났지. 끝섬은 육지랑 가까웠어, 끝섬, 제도, 육도 뭐 이런 섬들은 육지에서 총 쏘면 총알이 날아오고 했으니 말야. 그래 불안해서 소서읍으로 옮겨갔지. 그때 땅막을 지어서 네식구가 거기 살았었는데, 애 아바이가 많이 아팠어. 피난 올 때부터 장질부사에 걸려서는 내내 누워있었거든.

 

그러다 얼마 안 있어 인민군이 들어왔지. 인민군이 집집마다 다 뒤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끌어내는데 더러 잡아가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지. 거 따발총 있잖아 둥그런 접시 같은 거 달린 총 말야. 우리 사는 땅막에도 와서는 인민군이 따발총으로 거적문을 들치고 다 나오라는 거야. 내가 장질부사가 걸린 사람이 있어서 못나간다고 그랬더니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는 급히 가더라고. 병이 옮을까봐 무서웠던 게지. 그래 살았어. 아휴 안 그랬으면 벌써 다 죽은목숨인데 말야.

 

나중에 3058부댄가 하는 국군기관원들이 찾아와서 육지까지 배로 실어다 달라고 해서 애 아바이가 배를 몰고 나갔지.

 

그 배가 아주 작은 배였는데, 거 노 젓고 다니는 배 있지. 애 아바이가 기관원 실어주고 고향 가서 먹을 거라도 가져온다고 나갔었는데. 그렇게 육지로 간다고 가다가 바다에 뜬 배에 인민군이 총질을 해서 애 아버지가 떨어져 죽고 말았지. 거 시체도 찾지 못했어.

 

아휴... 이런 얘기 뭐 들을게 있다고...

 

나중에 연평으로 갔는데, 갯장수리(갯벌) 옆으로 집들이 쫙 있었지. 산도 있었는데 나무하러 꼭대기에 올라가면 고향이 훤히 보이고 그랬어.더러 친척이 사는 집에 얹혀 사는 사람도 있었고 거의가 땅막 짓고 살았지. 만석동에 처음 왔을 때도 땅막이었는데 연평하고 다른 건 거기는 꽤 넓게 지었다는 거야.

 

연평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할 일이 있었나. 그러니 배급으로 나오는 수숫겨 보릿겨 이런걸 가지고 산에서 풀을 뜯어다 같이 끓여 먹는 거야. 그걸 먹으면 온 몸이 붓는데 풀을 안 넣으면 배가 차지 않으니... 아휴~ 다들 그러고 살았네.

 

더러 일이라고 있는게 봄 되면 논에 모내기 품 파는 거 연락선 들어오면 짐 내리는 거 그 정도였어. 인천에서 백령도 이런 데로 다니는 연락선이 있었는데 '한성호'라고 배가 커 사람 싣고 짐 싣고 거기 장사꾼들이 싸구려 밀기울 보리쌀 가져와 팔고 했는데 주로 밀기울이었지.

 

게다 연평에 고깃배들이 많으니 여름에 고기를 잡으면 얼음에 보관해야 하잖아. 그래 커다란 빙고(얼음을 보관하는 창고)가 두 개 있었는데, 겨울에는 빙고에 얼음 져 나르는 일도 있었네 그려.한 겨울에 논둑에 물을 대서는 꽁꽁 얼면 그걸 깨서 지게로 져서 빙고에 쌓아두고 여름에 그걸 꺼내 쓰고 했거든.

 

일거리가 별로 없으니 어른들은 물론이고 애들도 먹을게 없잖아 그러니 배급 나오는 게 떨어지면 방에 딸 둘하고 세 식구가 이불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누워있는 거야. 애들 머리가 먹지도 못한데다 씻지도 못하니 부해가지고는 수세미처럼 엉겨 붙고 그때는 이가 어찌나 많았는지. 아휴...살기 힘드니 지금 할아바이를 그때 만났어. 그렇게 우리처럼 서로 남편 아내와 헤어져 연평에서 새로 만나 사는 사람도 많았지.

 

나중에 해군 배가 와서는 땅막에 있는 사람들을 우선 육지로 실어 나르고 나중에 친척집에 있던 사람들도 나르고 했지. 나도 그때 만석동으로 들어왔다네.(임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