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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이야기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by 형과니 2023. 5. 2.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7:27

 

"까만 갓난쟁이들이

물에 불어 떠다니다가.."

 

신정숙(73)할머니가 들려주는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50년대에는 고가도로 아래 철길까지 바다물이 들어왔다.

 

내 고향이 황해도 해주야. 전쟁통에 이곳(43번지)으로 피난 와서 낳은 큰아들이 지금 51살이니까 내가 여기 산지 51년이 되었지. 그때 내 나이가 22살이었어.

 

맨 처음 여기 왔을 때 집도 별로 없었지. 한 다섯 집쯤 있었나 아마 그럴 게야. 요 앞(만석동 161)에 일제시대 연탄공장 터가 있었고 지금 만석 1차 아파트 자리에는 강원회사라고 석유회사가 있었어.

 

그리고 지금 만석1차 아파트 건너편으로 '곡수골'이라고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이 지은 벽돌 건물이 있었지. 내가 왔을 때는 지붕은 다 날아가고 담벼락만 남아 있었어.

 

피난 온 사람들이 살 곳이 없으니 그 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지. 만석동 온지 몇 년 안되었을 때 거기 장질부사(장티푸스)가 돌았네 그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럿 죽었어. 그때 평양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해남월'이라는 유명한 기생이 있었는데 그이도 그때 죽었지.

 

그렇게 죽은 사람이 한 예닐곱 명되는구먼. 그래 죽은 사람들을 어디 제대로 묻을 때가 있었나. 지금 정유소(만석1차아파트 건너편)있는데 좀 남은 산 있잖아. 그 산이 예전엔 얼마나 높았는데 지금은 많이 깎여 집들이 들어섰지만. 그 산에다 다 대충 파묻었구먼. 지금도 파면 아마 송장이 나올 게야.

 

만석동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영감이 비누 사러 나갔다가 길바닥에서 인민군 보국대(사역하러)로 끌려가지 않았겠어. 그래 영감이 없는 동안 갯벌에서 조개도 캐서 팔고 떡 만들어 석탄 나르는 사람들한테 팔면서 살았네. 동네 사람들 거의 석탄 나르고 갯벌에서 조개 캐고 살았어.

 

그 때가 한참 전쟁중이라 동네에 이런 일도 있었다네.

하루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보니까 비행기 석대가 막 떠오더라구. 저놈의 비행기가 왜 떠오나 이러고 봤더니 비행기 하나가 공중에서 곤두박곤두박 하더니 날개쭉지가 하나 뚝 떨어지는거야. 그러더니 풀풀풀하면서 바닥으로 뚝 떨어지더라고. 그 떨어진 데가 바로 만석동 앞 바다였어.

 

나중에 들으니까 그 비행기가 이북 갔다가 한방 맞고 예 와서 떨어진 거라더구먼. 나중에 사람들이 그 비행기 건져서 고철로 팔았지.

 

만석동에 와서 한 1년쯤 지났을까. 동네에서 남편 없이 젊은 사람이 애 낳고 혼자 사는 게 가엾다고 집 지으라고 나무를 나눠주더라고. 그래 작은 '하꼬방' 하나를 지었는데 그때 지은 집이 아직도 요 앞에 있다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났고 집들도 많아졌지. 지금 3차아파트 앞에 거 새로 생긴 고가 밑에 있잖아. 거기에 그때는 겨우 머리 하나 겨우 디밀어 넣을 정도의 '하꼬방'이지 그런 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있었어. 그때 생각하면 지금 이 넓은 집(10평정도 되는)에 나 혼자 산다는 게 얼마나 미안하고 심난한지 몰라.

 

전쟁 중에는 미군 보급선이 요 앞에 괭이부리 말고 북성부두 가는 길 있잖아. 거기로 들어왔었는데, 미군들이 먹다버린 국방색 깡통이 갯가에 많이 쌓여 있었어. 사람들이 그걸 가져다가 펴서는 거 지붕 덮는 판 있잖아. 그때는 그걸 '도당'이라고 했는데 그걸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집 지으면서 지붕에 덮기도 했지.

 

없는 사람들은 지붕에 루핑을 깔았는데 여름에는 도무지 더워서 집에 들어가지를 못했지. 뭐 숨이 턱턱 막히는걸. 그래 여름만 되면 길가에 거적 깔아놓고 나와서 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

 

지금 아파트(만석비치타운) 짓는 자리 있잖아 그 앞 괭이부리 가는 길 쪽으로 기차길 옆에 축대가 죽 있었고 그 밑에가 다 갯벌이고 바다였어.

 

갯벌에 조개 캐러 나가면 갓난아기 시체가 바다에 둥둥 떠있는 것도 보았네 그려. 지금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는 미군이 하인천 앞에는 영국군이 있었는데, 주변에 양색시들이 많았지.

 

그래 양색시들이 애를 낳아서는 몰래 갯가에 버리고 가고 그랬어. 그러면 까만 갓난쟁이들이 물에 불어 떠다니다가 축대 틈에 끼여 말라붙어 있고 그랬어. 꼭 개구락지처럼 말이야. 그래도 생명인데 지금 생각해도 불쌍해.

 

(임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