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때 신의주 떠난 후 70년이 넘도록 못가봤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5:51
"14살 때 신의주 떠난 후
70년이 넘도록 못가봤네"
용윤서 할아버지(85)의 고향이야기
뗏목은 일일이 다 칡뿌리로 구멍을 내서 엮어서 만들었어
내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야. 만주하고서 다리하나 사이지. 열네살 때 고향을 떠나 70년이 되도록 가보지 못했어. 신의주 건너편이 만주땅 단동이야. 지금이야 국경 넘어가면 검문하겠지만 그때는 다 왜놈들이 관리하니까 그냥 다녔어. 신의주 너머부터 상해관까지는 만주로 치고 그 너머는 중국으로 치고 했는데, 만주에 왕이 따로 있었어.
만주로 가려면 배를 타거나 다리를 건너가고 했어. 신의주와 만주를 잇는 다리(압록강 철교)가 하나 있었는데, 기차도 다니고 차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고 그랬어. 나도 고향을 떠날 때 기차를 타고 그 다리를 건넜다네. 압록강에 큰배가 들어오면 그 다리 가운데가 열리는데, 다리가 옆으로 돌면서 길을 내주게 되어 있었어. 그래 양옆으로 배가 지나갈 수 있게 말야.
아마 그 다리가 왜정시대 전에 소련놈도 있고 프랑스놈들도 와있고 그럴 때 만들었던 것 같애. 백두산에서 내린 물이 압록강을 흘러 내려오는데, 뗏목이 많이 내려왔어.
백두산에서 나무를 베어가지고는 뗏목을 만들어 압록강으로 흘려 보내는 게야. 백두산에서 한번 내려올 때면 나무를 한 천 개쯤 묶어 내려오고 그랬어. 뗏목은 일일이 다 칡뿌리로 나무에 구멍을 내서 엮어서는 세 네 사람씩 그 위에 타고 내려오지. 그 사람들은 뗏목위에다 집을 지어 놓고는 밥도 해먹고 잠도 자고 그러면서 내려오는 게야.
그 나무들이 신의주까지 내려오는데, 뗏목이 내려오면 강 한곳에 모아 두는 곳도 있었지. 신의주에는 나무를 가지고하는 공장이 많았지. '영림소'라고 제재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거기서 일하면서 손도 잘리고, 팔도 잘리고, 다친 사람들도 많았지.
제지공장도 있었는데, 나무를 잘게 썰어서 삶아서는 종이를 만드는 게지. 그래 나무를 유황물에다 삶는지 환자들이 몰려들어서는 만병통치라고 그물에 목욕하고 그랬는데 더러 부스럼병 같은 건 고치고 했어.
그때만 해도 신의주 하면 서울 담에 평양, 그 담에 신의주 할 정도로 도시가 컸어. 그래 신의주에서 돈 못 벌면 우리나라 아무데 가도 돈 못 벌고 산다고 했다네.
그래서 신의주엔 농사 짓는 사람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고 거 요즘 보따리 장사들 있잖아, 그것처럼 중국으로 넘어가 밀수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광목 같은 거 가져다 만주나 중국에 가서는 술이나 설탕 뭐 여러 가지랑 물물교환 해 오는게지. 그땐 광목을 왜놈들 몰래 가져가다가 들켜서 압수 당하고 하는 일이 많았어. 왜놈들이 세파트를 가져다 키우면서 단속하고 했으니까.
또 우리나라랑 만주랑 중국이 각각 쓰는 화폐가 다 달라요. 그래 상해관에 가서 환전해 쓰고 했는데, 중국돈이 거 은전있잖아, 은으로 된 돈 말야. 나중에 왜놈들이 지폐로 다 바꿔 교환해 주고는 그 은은 다 자기 나라로 가져가고 그랬다네.
우리나라에서 중국까지 철길이 다 연결되어 있었으니 만주나 신의주나 사는 게 다 비슷했지. 상해관에 가면 천진으로 가는 길, 북경으로 가는 길 이래 갈라지는데 왜놈들 꼴 보기 싫고 살기 어려워 그리로 가서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았지.
만주가고, 중국가고, 홍콩, 북경, 상하이 가는 것도 자유로왔으니 말야. 그래 조선족이라는 것이 이건 사실은 같은 우리 민족인데. 뭐 조선족이라고 해서 받아주지도 않고 차별하고 그러는거 그게 도대체 틀려먹은 짓이야.
겨울이 되면 신의주는 무척 추워요. 영하 20도, 30도 그러니까. 수염에 고드름이 생길 정도로 춥지. 그래 추우니 압록강이 꽝꽝 얼지. 두께가 어린아이 키만큼은 될게야. 강이 얼면 중국사람들이 썰매로 사람들을 건네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옆으로 앞으로 지치면서 참 썰매를 잘 타. 한 번 건너는데 그때 돈 5전인가 줬지. 또 압록강이 얼면 그걸 톱으로 썰어 창고에 두었다가 여름에 파는 장사들도 있고 그랬어.
그렇게 추울 땐 뜨뜻한 구들에 앉아 찬 냉면 먹는 게 그게 참 맛이 좋았지. 이젠 나이 들어 언제 고향에 가서 그 찬 냉면을 먹어 볼런지 그게 참 그리운데 말야.
(임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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